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서민들에게 저축은 딴 나라 얘기다. 장래 목돈이 들어갈 때를 대비한 비상금, 노후 대비 명목 등으로 최소한의 저축이 필요하지만 연금마저 깨서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가계 경제가 힘들어지고 있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우리나라 총저축률은 34.8%로 직전 분기에 기록한 35.5%보다 0.7%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저축률과 비교하면 1.0%포인트나 낮아진 수치다. 특히 지난 1분기 36.2%였던 총저축률은 올 들어 매 분기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은은 저축률이 낮아진 배경에 대해 “3분기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이 405조 원으로 전 분기 대비 3000억 원(0.1%) 감소한 반면, 최종소비지출은 264조 원으로 2조7000억 원(1.0%) 증가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쓸 수 있는 돈은 이전보다 줄었는데 쓸 곳은 오히려 늘어 저축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얘기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분석 결과, 개인사업자와 비영리단체를 포함한 ‘광의의 가계부채’인 개인금융부채의 가처분소득 대비 비율은 2012년 159.4%, 2013년 160.2%, 2014년 162.9%, 지난해 169.9%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도 171.7%까지 높아진 상태다.
가계 가처분소득에서 개인의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뜻은 1300조 원에 달하는 가계 빚 상환부담이 늘면서 저축 등 투자 여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낮아지면서 대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예금ㆍ적금 등 은행의 전통상품에 돈을 맡기는 고객이 많이 줄었다”면서 “펀드 및 보험 해지 요청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각 회원사를 상대로 집계한 올 상반기 보험 해지 환급금은 각각 9조7400억 원, 4조9900억 원으로 합계 14조73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전년 동기(14조600억 원)보다 5%가량 증가한 규모다.
특히 은퇴 자금 준비 상품으로 각광을 받는 변액연금보험의 경우 다수의 변액보험 상품이 7년 이내에 해지할 경우 납입한 보험료의 원금보다 적게 환급 받는다. 금감원은 변액보험을 7년 이상 유지하는 비율이 올해 3월 기준 약 30%에 불과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변액보험 가입자 10명 중 7명이 원금 손해에도 중도 해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영업자인 김성수(40ㆍ가명) 씨도 노후 대비를 위해 A사의 변액연금보험에 가입했다. 김 씨는 그동안 변액보험의 펀드수익률이 나쁘지 않아 원금 이상의 해지환급금을 기대했지만 막상 환급금을 알아보니 원금의 88%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제적 사정으로 가입한 지 5년 만에 보험을 해지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계속된다면 올 한 해 보험 해지 환급금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2년 이후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