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정우 칼럼] 트럼프의 귀를 잡아라

입력 2016-12-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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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구원 초청 연구위원

40일 뒤 취임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외국의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읽는 데 도움 받을 구석이 마땅치 않다. 그가 내뱉은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정도다. 그의 말과 행동의 괴리를 연구한 미국 정치학자 대니얼 드래즈너의 분석이다. 달리 해석하면 계산은 빠르고 수완은 좋으나 그의 말만 믿어선 안 되는 지도자란 얘기다.

미국인들은 수도 워싱턴에서 일하는 이들을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비아냥 섞인 표현이다. 트럼프는 이 같은 워싱턴 기득권자들을 비난하며 표를 얻은 사업가다. 자란 환경이나 축적한 재산을 보면 그 역시 둘도 없는 기득권자다.

밖에서 보는 트럼프 역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그 자신이 자기 행동을 예측 가능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니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지 밖에선 더욱 알기 힘들다. 우리가 흔히 접하고 정보를 얻는 워싱턴의 싱크 탱크나 지식인들조차 새 대통령의 행보에 관해선 그저 자신 없는 예측뿐이다.

와중에 우리 정부 인사나 정치인들이 워싱턴과 뉴욕을 들락거리며 트럼프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인연을 맺으려 애쓰고 있다. 별 소용없는 일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트럼프의 귀를 잡고 있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서둘러 뉴욕으로 달려가 트럼프를 만났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인연을 맺으려 오래 노력했고 또 돈도 많이 투자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 역시 한계가 있다. 적어도 트럼프라고 하는 예측하기 힘든 사업가와의 관계에선 그렇다.

따져 보면 우리도 미 공화당에 알고 지내던 인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오바마 민주당 정부 8년 동안 조직 관리에 소홀했다. 게다가 우리 국내 사정이 어수선해서 세심하게 챙겨 보지도 못했다. 이제 정신 차려 할 일을 찾아보자. 어떻게 하면 트럼프 행정부와 잘 지내며 엉뚱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인지.

트럼프는 책을 읽어 지식을 얻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 서면 보고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대면 보고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는 지도자다. 대선 기간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뉴욕 타임스 기자들과의 갑작스러운 오찬에서 트럼프는 미 국익을 위해 신체 고문은 필요하다고 말했던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실토했다. 국방 장관으로 지명한 제임스 매티스 과거 중동지역 총괄 중부사령관과의 대화를 통해 현지 실상을 파악하고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대통령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경선 당시 엉뚱한 얘기를 했던 트럼프의 정책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내놓았다.

이제 우리는 트럼프의 귀에 꽂히는 얘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를 만나는 짧은 시간에 그의 가슴에 훌쩍 와 닿는 얘기를 찾아야 한다.

우선 그는 ‘미국 우선’을 앞세우는 대통령이다. 미국의 가치와 장점을 부추기는 얘기로 시작한다. 둘째, 미국의 그런 외교 정책에 한국이 가장 성공적이고 미국이 자랑할 만한 사례임을 강조한다. 셋째, 동아시아 지역이 미국에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넷째, 특히 한국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북한 문제 해결이 왜 미국의 국익과 직결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경제 규모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것임을 강조한다.

다만 일본이 하듯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의 노력을 부각하는 얄팍한 짓은 피해야 한다. 또한 중국을 들먹이는 주제 넘은 발언도 삼가야 한다. 트럼프와의 대화는 주변이 모두 듣고 있다. 미국만이 우리의 상대는 아니다.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웃사이더’ 트럼프와의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연함을 잃지 말자. 우리에게만 낯선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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