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다시 시험대에 오른 ‘일렉토럴 칼리지’

입력 2017-01-0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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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선거제도, 그중에서도 ‘일렉토럴 칼리지(Electoral College)’라고 불리는 ‘선거인단’ 제도입니다. 여기에 미국의 역사, 정치, 문화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선거인단 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면서도 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모순과 조화의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민주주의 재앙’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천재적인 구상’이라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는 처음에 이 제도를 재앙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천재적이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전체 득표 수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280만 표를 뒤졌으나 선거인단 숫자에서 74표(트럼프 306표, 힐러리 232표)를 더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이 문제가 나오면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대통령을 선거인단이 뽑는 제도가 아니고 전체 득표 수로 하는 것이었다면 선거 전략을 거기에 맞추어 자기가 표를 더 많이 얻었을 것이라고 트위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로 트럼프와 클린턴 전 대통령 사이에 감정적인 말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선거인단 제도가 논란의 도마 위에 다시 오르고, 뉴욕타임스가 사설로 선거인단 폐지를 다시 주장하는 가운데 힐러리와 가까운 캘리포니아 출신의 연방 상원의원 바바라 박서가 이 제도를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득표 경쟁에서 이겼으면서도 규정 때문에 패배한 선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미국 역사에서 다섯 번째이고 가장 최근에는 2000년 앨 고어와 조지 W.부시 간에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일렉토럴 칼리지’, 즉 선거인단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의원의 집합체입니다. 선거 때마다 대두되는 ‘미국 대통령 선출이 직선제냐, 간선제냐’ 하는 질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선거인단입니다. 선거인단은 각 주에서 직접 선거로 국민이 선출하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이면서도 간선제’입니다.

이들 선거인단은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되지만,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떤 주에서는 예선에서 선출하고, 어떤 주는 각 정당에서 뽑고, 또 어떤 주에서는 대통령 후보가 지명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선거인단으로 지명될 때 자기 주에서 표를 가장 많이 얻은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 ‘신뢰의 약속’은 주 법으로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연방 법으로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이런 상충된 법으로 인해 이 문제가 연방 대법원까지 제소되었습니다. 연방 대법원은 주 정부가 약속을 어긴 선거인단에게 벌을 주고 교체하거나, 그가 던진 표를 무효화할 수 있으나, 선거인단은 자기 양심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판결을 했습니다.

선거인단 제도가 모순을 안고 태어난 것은 미국의 건국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건국될 때 각 주는 사실상 하나의 ‘국가(State)’였고, 이들 국가가 ‘연합해서(United)’ 연방(Federal), 즉 ‘국가연합(United States)’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 국가 연합체에서 가장 큰 논란의 걸림돌이 인구가 많은 큰 주의 독점 정치를 어떻게 최소화하고 인구가 적은 주의 위상을 보호해주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남부 지역의 노예 경제권을 보호해주기 위한 고육책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원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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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최종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과반수를 득표해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을 공식 확정지었다. 영국의 한 신문 가판대에 트럼프가 작년 11월 8일 대선에서 정치 엘리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돼 이변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다룬 신문들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최종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과반수를 득표해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을 공식 확정지었다. 영국의 한 신문 가판대에 트럼프가 작년 11월 8일 대선에서 정치 엘리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돼 이변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다룬 신문들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대통령 선거인단은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숫자를 합한 535명에 워싱턴 DC 대표 3명을 추가한 숫자로 총 538명입니다. 이들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표를 얻는 사람이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하원의원은 인구 숫자에 비례해 70만 정도에 1명을 할애한 것이고, 상원의원은 주의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주에 균등하게 2명씩 배분했습니다. 상원의원은 인구가 적은 주에 정치적으로 특별 보너스를 준 것이고, 이 정치 보너스가 선거인단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여기에 ‘승자 독식(winner-takes-all)’ 선거 방식이 도입되어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의 가장 작은 주 주민은 가장 큰 주의 주민보다 4배의 대표성을 지닌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모든 국민이 한 표를 행사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점을 견제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민주주의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별 제도를 고안한 것입니다. 갈등과 모순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갈등과 모순된 제도가 200년을 유지해 왔습니다. 180년 전 버지니아 주 선거인단의 집단 변심으로 하원에서 부통령을 뽑은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인단은 거의 모두가 원래 지지하기로 한 후보자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신뢰를 지키지 않는 선거인단이 서너 명씩 있었지만, 이들 법을 어긴 사람에게 벌을 준 적은 없었습니다. 2016년 선거에서는 7명의 선거인단이 신뢰를 지키지 않은 이탈자가 되었습니다.

16년 전 고어가 부시에게 패배할 때는 전체 득표 수에서 54만 표 차이였고, 이런 현상이 112년 만에 일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선거인단 폐지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이번처럼 전체 득표 수가 300만 명 가까이 차이가 나고 16년 사이에 다시 이런 현상이 발생하자 폐지론자의 목소리가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여론은 반대 현상을 보여줍니다. 1968년에 최고 80%가 선거인단 폐지를 찬성한 뒤 그동안 60% 수준을 유지해 오다가 올해 조사에서는 가장 낮은 49%로 내려갔습니다(갤럽 여론조사).

선거인단 폐지에 찬성하는 측은, 이 제도가 낡고, 비민주적이며, ‘경합 주(Swing State)’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투표 참여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 자금과 후보자들의 지역구 방문의 95%가 경합 주와 예비 경합 주 12개 주에 집중되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선거인단 폐지를 반대하는 측은 미국은 주 정부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보장하는 연방 국가이고, 전체 득표 수로 대통령을 뽑을 경우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큰 주와 대도시 사람들이 대통령 선출을 독점하고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들은 대도시 중심으로 선거 운동을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농촌과 작은 도시는 낙후·소외되고, 이로 인해 국가 정책 방향이 대도시 중심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번에 바바라 박서 민주당 상원의원이 발의한 선거인단 폐지안은 공화당이 개정에 반대하고 있고 전체 50개 주 가운데 4분의 3이 찬성해야 하므로 성사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1968년에 헌법 개정이 가능할 뻔했던 것은 소수 인종 이민자 급증과 이들의 민주당 경도 현상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득표 수로 대통령을 뽑을 경우 현재로는 보수적인 공화당이 불리합니다.

선거인단 제도가 그동안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면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온 것은 미국이 동질성과 성숙한 민주 의식을 유지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심해지는 다인종·다문화 현상으로 집단 이기주의가 고개를 들고 인종과 이념, 종교 간의 이해 상충이 커지고, 의식 문화가 도전받으면서 선거인단 제도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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