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새해 외교 핵심 사안으로 ‘사드 배치 반대’를 공언하자, 한국 산업계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놓고 안보 가치와 경제 가치가 충돌하면서, ‘금한령(禁韓令)→전세기 불허→제조업’에 이르는 보이지 않는 압박의 수위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ㆍ기아차 등 중국 내 사업 비중이 높은 대기업들이 중국 현지 시장에서 국민 여론이 반한(反韓)으로 돌아섰을 경우 미칠 여파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중국 소비자 심기를 살피라”라는 현장 지침을 급히 하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중국 소비자와 접점을 형성하는 부서를 중심으로 상담실 운영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오해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중국 5공장인 충징공장이 초미의 관심사다. 사드로 인해 중국 판매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외교방향의 핵심 중 하나로 공식화하면서, 정몽구 회장 등 경영진이 직접 중간점검을 지시하는 등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2000년 마늘 파동 때에 휴대전화 수입 금지라는 직접적인 통상 수단을 가한 전력이 있다. 당시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물리는 관세를 10배가량 올리자 일주일 뒤 중국 정부는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당시 한국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마늘은 1000만 달러 미만이었는데 중국이 막아버린 수출 규모는 5억 달러를 넘었다.
이처럼 한·중 갈등이 고조될수록 재계의 속앓이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삼성SDI와 LG화학이 만든 전기차 배터리를 쓰는 차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배터리 보조금은 차량 가격의 50%에 달한다. 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완성차 업체는 한국 업체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자국 내 모든 기업이 대상이고, 240여 개 업체가 난립한 상황을 정리해, 시장 경쟁력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 삼성과 LG그룹, 현대차그룹 등 우리 대기업들부터 부품ㆍ소재를 공급받고 있는 중국 거래선들은 아직까지 표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드 문제는 양국 정부 간 외교적 문제일 뿐, 기업 간 거래에서는 관련이 없다는 모습이지만, 각 기업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면서 거래선의 심중을 살피는 모양새다.
반면 중국인 관광객 등 대(對)중국 매출에 상당 부분 의지하는 유통업계는 이미 초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면세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우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중국 관광객과 연계된 면세, 호텔, 여행 등 전반적인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춘절과 노동절, 중추절, 국경절이라는 면세업계 4대 행사에 타격이 우려된다”면서 “당장 춘절과 관련한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이나, 매출 비중이 큰 노동절과 국경절의 실적은 벌써부터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