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두두두두둥자’의 설날

입력 2017-01-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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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섣달그믐인 내일은 설맞이 준비로 바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철없던 시절엔 까치설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다. 어느 해인가 버티다 버티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썹이 하얘져 엉엉 운 적이 있다. 물론 오빠들과 언니가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둔 것이다. 걱정할 줄 알았던 아버지와 엄마마저 큰 소리로 웃어서 무척 서운했다. 작은오빠는 내 새 신발도 감춰놓고 “도깨비가 우리 두두두두둥자 신발을 신고 갔으니 이제 큰일 났다”며 놀려댔다. ‘둥자’는 장난에 잘 속아 넘어가고 약지 못한 데다 행동까지 굼떠 붙은 내 어릴 적 별명이다. 한자 ‘둔자(鈍者)’에서 따온 듯하다. 그런데 두 오빠는 노래를 부르듯 늘 ‘두두두두둥자’라고 불렀다.

“슬(설)에 올겨, 안 올겨? 전라도 화순에 가서 어르신들이 만든 ‘진짜’ 복조리를 사다 놨으니께 꼭 와.” 엄마는 색깔이 화려한 중국산 복조리나 플라스틱 복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일 년 내내 먹을 것 등 복을 생기게 하는 귀한 물건인데, ‘가짜’를 집 안에 걸어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쩌면 우리 다섯 남매가 남한테 손 벌리지 않고 먹고살 만한 게 ‘진짜’ 복조리 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을 구정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구정(음력 1월 1일)과 신정(양력 1월 1일)의 개념은 언제 생겼을까?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우리의 전통 명절 ‘설’도 큰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최대 명절인 설을 없애고, 대신 일본 설인 ‘신정’을 쇠라고 강요했다. 우리 설은 ‘구정’이라 부르며 하루빨리 버려야 할 구습으로 깎아내렸다. 설이 가까워 오면 방앗간 문을 못 열게 하고, 설엔 흰 옷 차림으로 세배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는 등 야비한 술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민중은 신정을 ‘왜놈 설’이라 부르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설을 지켰다.

해방 이후에도 곡절을 겪다, 1985년에야 ‘구정’이 ‘민속의 날’로 바뀌었다. 그리고 1989년 드디어 옛 이름 ‘설날’을 찾고 공휴일로 지정됐다. ‘구정 → 민속의 날 → 설날’의 힘든 과정을 겪었으니 이제 더 이상 구정, 신정으로 구분해 부를 이유가 없다. 음력설, 양력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설은 당연히 음력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은 세는 것인가, 쇠는 것인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 설은 ‘쇠는’ 것이다. 쇠다는 ‘명절, 생일, 기념일 같은 날을 맞이하여 지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추석, 대보름, 단오, 동짓날, 환갑 등을 맞아 지낼 때에도 ‘쇠다’라고 표현한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는 속담이 있다. 설에 눈이 많이 오고, 대보름엔 환한 달이 떠야 풍년이 들어서 좋다는 의미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설날 아침엔 흰 눈이 쌓여야 왠지 더 상서로운 새날의 느낌이 든다. 올 설 전후로 눈이나 비가 온단다. 풍년이 든다는 ‘진 설’인 만큼 모두들 꿈과 희망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독자 여러분, 설 명절 잘 쇠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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