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마을이라는 말은 더욱 낯설 것이다. 방과 천장 벽의 도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절을 한다는 뜻의 도배(都拜)이다. 설날에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동으로 세배하는 풍습을 오늘까지 이어왔다. 마을의 대동계는 450년간 이어져 내려왔고,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촌장님을 모시고 사는 유교 전통마을이다.
정월 초하루 설날에는 집집마다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게 세배를 올리고 가까이 있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그리고 초이튿날이면 마을 어른들이 한복 정장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마을회관으로도 사용하는 민속전통문화전승관에 하나둘씩 모여든다. 올해 연세 93세의 촌장님도 마을 사람들이 가마로 모셔 온다. 그리고 촌장님께 마을 사람들이 합동으로 세배를 올리고, 또 마을 사람들끼리 세배를 한다.
처음엔 위촌리 마을만 촌장님께 합동세배를 올렸다. 그런데 다른 마을에서 보기에도 그것이 좋아 지금은 강릉 인근의 30여 부락에서 합동세배를 올린다. 설날에 저마다 집안에서 차례와 세배를 끝낸 후 자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지만, 이 마을은 설날 다음 날에 치러지는 합동세배식인 도배례까지 마치고, 또 도배례가 끝난 다음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세찬을 나눈 다음에야 헤어진다.
450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대동계의 향약도 대단하지만, 마을 합동세배 풍습도 대단하다. 향약은 450년간 이어져 왔지만 합동세배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국 강토를 병탄한 일본이 강제로 우리 고유의 설을 쇠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단결하여 정월 초하루는 저마다 집에서 설을 쇠고, 초이튿날 촌장님 집에 모여 합동세배를 올리자고 약속했다. 그것이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지고 해방이 되고, 또 군사독재정권이 우리 고유의 설날을 없는 명절처럼 여길 때에도 여기에 저항해 이 풍습을 끝까지 지키고 유지해왔다.
그것이 또 새로운 전통이 되어 외지에 나가 있는 이 마을 사람들 모두 설날 다음 날에 치러지는 합동세배식을 마쳐야 마을을 떠난다. 집안에서만 설을 쇠면 집안 사람들만 보고 떠나지만 초이튿날 마을 합동세배를 하면 집안 어른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 만나 인사를 하고 떠난다. 나 역시 이 행사를 마치고 올라와야 그해 제대로 설을 쇤 생각이 든다.
도시 사람들은 그것도 허례허식이며,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년 정초에 치르는 이 합동세배는 마을의 경로효친과 동리의 질서 유지, 또 온 마을의 대동화합을 이룬다.
이 마을의 민속전통문화전승관 안에는 물론 각 가정마다 거실에 ‘향약의 4대 강목을 잘 실천하자’는 글이 붙어 있다. 어질고 착한 일은 서로 권해주고(덕업상권), 잘못은 서로 규제해주고(과실상규), 바른 풍습으로 서로 친교를 맺고(예속상교),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서로 돕는(환난상휼)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