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그동안 기업문화를 단지 립서비스로만 여겼다. 그러나 최근 기업문화를 경시했던 기업들이 막대한 타격을 받으면서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하고 있다. 기업문화가 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고경영자(CEO)들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만연한 성희롱과 성차별,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불법 프로그램 사용,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무려 10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 기밀자료를 빼돌리고 이직해 한 사업부의 책임자가 된 엔지니어, 가난한 운전기사에게 막말하는 CEO.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이자 700억 달러(약 81조 원)의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우버에서 벌어진 것이다. 잘못된 기업문화를 유지한 결과 실리콘밸리 혁신을 주도하는 스타트업의 기수에서 타파돼야 할 악습을 골고루 가진 추악한 기업으로 전락하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월 성추행 스캔들이 폭로되고 나서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CEO는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가진 회의 도중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잘못된 기업문화를 고쳐야 한다는 직원들의 충고를 무시한 것에 사과했다. 이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를 가진 한 우버 전 직원은 “우버는 적자 생존의 생태계에서 인정사정없이 서로를 물고 뜯는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오로지 성과만 중시하는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자율주행차 사업부인 웨이모는 이달 초 우버를 특허 침해와 영업기밀 절취 혐의로 고소했다. 웨이모 엔지니어였던 앤서니 레반도우스키가 회사 기밀자료를 훔치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트럭 스타트업 오토(Otto)를 세웠다. 우버는 이후 오토를 인수해 레반도우스키는 우버 자율주행 사업부를 이끌게 됐고 우버의 자율주행차량에는 오토의 기술이 들어가게 됐다. 한마디로 우버는 구글 기술을 훔쳤으면서도 혁신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또 지난달 말에는 칼라닉 CEO가 우버 운전기사에게 욕설과 함께 막말을 퍼붓는 동영상이 공개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제프 존스 우버 사장이 이달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했다.
그나마 칼라닉 CEO는 아직 자신의 기업문화를 고칠 기회를 가졌으니 다른 기업보다 나을 수도 있다. 유례없는 기업문화 위기 속에서 우버 여성 이사인 애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설립자는 회사 내 다른 여성 임원 3명과 함께 지난 21일(현지시간)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칼라닉을 보좌하고 기업문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버는 또 사내 성차별 문화 타파를 위해 ‘다양성 보고서’도 발행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견실한 은행으로 이름 높은 웰스파고도 잘못된 기업문화의 덫에 걸렸다. 직원들이 은행의 강압적 영업목표 압박을 견디지 못해 고객 개인정보를 도용해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 약 200만 개를 개설한 ‘유령계좌’ 스캔들이 지난해 터진 것이다. 이 스캔들에 연루된 직원 약 5300명과 클라우디아 러스 앤더슨 전 소매금융 부문 최고리스크책임자(CRO) 등 임원들이 줄줄이 해고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칭송을 받았던 존 스텀프 전 회장 겸 CEO도 지난해 10월 사임했다.
기업문화는 오랫동안 기업들의 성공이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는 주원인으로 꼽혀왔다. 그러면서도 CEO들이 가장 간과했던 부문 중 하나가 기업문화였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이달 초 기사에서 소셜미디어의 역할이 확대되고 소비자와 직원들의 기업문화에 대한 기대치도 이전보다 커졌다고 분석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특정 회사의 부적절한 기업문화가 실시간으로 공유돼 사회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취업 전문 사이트 글래스도어 등 웹사이트들은 마치 영화를 리뷰하는 것처럼 기업문화를 자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준다. 컨설팅업체 CEB의 브라이언 크룹 인사 부문 대표는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들이 어떻게 직원들을 대우하는지를 그 기업의 가치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며 “많은 사람이 기업 문제 이슈를 중시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탠퍼드대학의 밥 서튼 교수는 “온라인에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 노출은 이전보다 훨씬 위험하고 통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평판 전문 컨설팅업체 레퓨테이션이코노미어드바이저스의 앤서니 존드로 공동 설립자 겸 CEO는 “웰스파고 스캔들과 달리 우버 이슈는 소비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우버는 웰스파고보다는 타격을 덜 받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버는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또 반복되는 나쁜 뉴스에 소비자들도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