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당하는 죽음, 맞이하는 죽음

입력 2017-04-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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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형이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했다. 폐암이 온몸으로 퍼져 호전되기를 더 이상 바라기가 어렵게 되어서다. 병원 주변에 조그만 숲도 보이고 나무들도 있어 도시의 대형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것보단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형수와 전화통화를 했더니 의사가 며칠을 더 넘기기 어렵겠다고 했단다. 조만간 임종실로 내려가야 되겠다고…. 형은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죽으러 들어가는 병원에 왜 나를 맡기느냐”, “나만 왜 죽어야 하느냐”며 가족을 원망하고 억울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에 수면제로 잠을 청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한단다.

교육 탓이 크다. 죽음을 맞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죽음을 외면하고 부정하면서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건물의 4층을 F층으로 표시하거나 4층이 없이 3층에서 바로 5층으로 이어지는 건물을 보면,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마을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는 나라들과는 달리 동네 가까이 화장(火葬) 시설이 들어오는 것도 극구 반대하는 게 우리네 정서다. 고칠 수 없는 말기 암 판정을 내리고도 정작 환자에게는 알리지도 않는다. 특히 환자가 부모인 경우 사실대로 알리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면 병이 급격하게 악화할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으며 사실대로 얘기해 주어야 의사와 환자, 환자와 가족 간에 신뢰가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고 충실하게 보낼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고칠 수도 없는 병을 치료한다고 수술을 몇 차례나 하고, 산소호흡기를 끼워서 중환자실에 눕혀 놓는 것이 과연 환자를 위하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리를 다한다는 가족의 명분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코로 영양을 공급받는 고통을 감내하며 각종 기계 소음과 신음 소리에 시달리면서 중환자실에 외롭게 누워 있는 것은 존엄한 죽음이나 편안한 죽음과 거리가 멀다.

고통 속에서 몇 달이나 몇 년을 더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환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치료’에만 매달리지 말고 ‘돌봄’에 초점을 맞추어 고통을 줄여 주어야 한다. 죽음의 질과 삶의 질을 동시에 높이는 길이 무엇인지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의 적이나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할,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죽음에 대해 가르치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죽음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은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줄어들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늘어나며 우리 사회도 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아이들이 싫어하지만, 아내와 죽음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눈다. 죽을병에 걸려도 사실대로 즉시 알려주고,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으로 연명 치료는 하지 말 것을 서로 당부한다. 장례식은 가족 위주로 조촐하게 치르고 좋은 사람 있으면 다시 결혼해서 즐겁게 살라는 덕담까지 나눴다. “재수 없게 왜 자꾸 죽는 얘기냐, 나보고 빨리 죽으라는 말이냐”라고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맑은 정신으로, 분명한 나의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하는 길이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한국죽음학회의 표어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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