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장 컨설팅 전문가 이기동 박사(골디락스 대표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박사는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강대에서 MBA, 청주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졸업후 금융회사에 근무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2000년부터 경영컨설팅을 해 오고 있다. 기획예산처, 코레일, 우체국, 한화그룹 금융, 스카이72골프&리조트 등 200여 개 이상 조직의 고객 중심적 전략에 대해 컨설팅을 했다. 하나투어 경영고문, 삼천리 경영자문을 맡고 있다. 특히 스카이72골프장 초기부터 컨설팅을 하며 골프장컨설팅 전문가로도 활동 중이다. 골프는 수준급이고 2011년에 마라톤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풀코스 34회 완주했고, 2015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참가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3시간 28분 16초이다.
△중국 하이난 하이커우의 미션 힐스컨트리클럽에서 180홀 라운드했다고 들었다.
“지난 4월 2일부터 ‘스릭슨과 함께하는 미션 힐스 블록버스터 골프 180’ 이벤트에 참가해서 4일 동안 10개 골프 코스 180홀을 라운드했다. 작년 6월, 11월에 이어 세 번째 180홀 라운드했는데, 이는 아마도 세계 최초 기록이 아닌가 싶다. 또한 2013년 6월 19일에 스카이72골프&리조트의 4개코스 72홀을 하루 20시간 만에 국내 최초 완주하는 공인기록도 수립했다. 지인들은 내가 ‘골프에 미쳤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이 듣기 좋다. 경영컨설팅의 구루 톰 피터스는 ‘그 어떤 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는 ‘그는 미쳤다’라는 말이다’라고 했지 않은가.”
△180홀 라운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라운드 횟수가 거듭되면서 18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골프의 마력에 빠져들고, 결국 ‘내가 진정 골프를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감정을 깨닫게 됐다. 마라토너가 달리는 중 뇌속에 생성되는 엔도르핀 때문에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같은 매혹적인 경험에 빠지듯이 180홀을 4일 만에 라운드 하는 극한의 경험 과정에서 스스로 골프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에 빠졌다. 나는 이를 골퍼스 하이(golfers high)라고 부른다. 그래서 골프는 마약이다. 아니 그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다.”
△골프장이 180홀 라운드를 허용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36홀, 54홀 골프장이 파는 상품은 대부분 18홀이다. 반면에 10개 코스 180홀 라운드라는 것은 기존 18홀 기준의 고정관념을 깨는 신상품이다. 즉, 골프장이 가진 잠재 역량을 완전 연소시키게 만드는 상품이 된다는 의미다. 현재 골프장들은 불완전 연소를 하고 있다. 완전 연소라는 것은 골퍼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때를 말한다. 골프장은 자신의 골프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골프장이 살 수 있으니까. 나처럼 골프에서 익스트림을 추구하려는 골퍼들이 많다. 이런 고객의 니즈가 바로 상품이고, 골프장은 이런 걸 상품화해야 한다.”
△국내 골프장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다고 보는가.
“헤드 윈드(Head wind)를 맞으며 블라인드 홀(Blind Hole)에 선 골퍼 같다. 앞바람이 강력하게 불고 그린이 보이지 않는 홀의 티잉 그라운드에 선 골퍼는 어느 클럽을 잡고, 어디로 샷을 해야 할 지 막막할 때가 적지 않다. 이처럼 골프장들도 지금 앞길이 잘 안 보이고 미래기 불확실한 상황이다. 500개 골프장이 경쟁하는 골프업계는 지속적으로 1인 객단가가 하락하고 있고 70개 이상의 골프장이 적자 또는 경영위기에 처해 있다. 18홀로는 안정적 수익, 운영 효율성을 확보하는 게 점점 어려워져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자연히 위탁경영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경기 침체기의 고객들은 점점 더 가격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합리적 소비 경향이 강하다. 시장의 주도권은 수요자인 고객에게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골프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골프장경영의 보틀넥(병목현상)을 없애야 한다. 보틀넥에는 몇 가지가 있다. 골프장의 낡고 오래된 고객체험, 불필요한 대규모의 비용 카테고리, 골프장에 대한 부정적 외부효과, 의욕이 저하된 직원과 캐디, 고객 니즈를 유료화하는 데 실패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골프산업은 무수익지대로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수익을 찾는 경영을 해야 한다. 더욱 절박하고 다급하게 혁신을 해야 한다. 그것도 단시간 내에 저비용으로 아주 깔끔하게 해치워야 한다. 이용료, 서비스, 채널, 품질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고객 경험을 새롭게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고객을 고객화하는 전략도 추구해야 한다.”
△골프장의 ‘낡고 오래된 고객체험’이라는 게 무엇인가.
“한 마디로, 골프장 업의 고객경험이 오랜 기간 동안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잔디 깔고, 으리으리한 클럽하우스를 짓고, 하늘이 맑아 찾아오는 고객에게 이용료 받으며, 라운드 때 캐디와 카트가 꼭 따라 붙어야 하는 등의 고객체험을 말한다. 낡은 고객체험은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과 고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국내 골프장 경영은 여전히 천수답(天水畓) 경영을 하고 있다.”
△골프장의 낡고 오래된 고객체험을 깨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골프장 경영자들이 시장의 변화에 맞춰서 올바르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도 골프장을 부동산업처럼 목 장사라 여기고, 그룹의 놀이터로 생각하며, 골프장 사장은 오너들에게 의전만 잘하면 되는 식의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경영자들이 적지 않다. 경영자 스스로 낡고 오래된 경영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골프장이 ‘갑’이던 시절에 성장한 경영자들이 겉으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경영방식을 답습하고 있어서 문제다. 골프장 대표가 골프장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보틀넥이란 점을 모르고 있다.”
△경영자가 ‘골프장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보틀넥’이라니 매우 역설적이다. 경영자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고객이 지불한 비용에 대해 ‘우리 골프장은 납득 가능한 대가를 제대로 돌려주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올해는 소비구조의 질적인 변화가 심화되고, 고객은 가성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한 단계 높은 부가가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골프장에서 단지 과시를 위해 소비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진정 이해하고 이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고객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경영의 상수로 봐야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국내 골프장을 돌아보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내 일부 골프장은 ‘경영’이라는 게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앞으로 뭐가 되겠다는 비전이나,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전략이 거의 없었다. 단지 골프장 오너의 개인적 취향과 태도가 골프장을 이끌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객을 중심으로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어느 골프장 경영자는 ‘코스에 흠집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벙커벽도 깨끗하게, 카트 도로에 풀 하나 안 나게 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갈 것이다. 세포아 등 잡티 하나 허용 안 할 것이다. 이게 우리 오너 뜻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오너의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지금처럼 골퍼가 ‘갑’이고, 골프장이 ‘을’인 시대, 그래서 고객 중심적 경영을 해 나가야 하는 시대에 적합한 방식인지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너의 생사 여탈을 쥐고 있는 게 고객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오너가 무엇을 원할까 보다 고객이 무얼 원할까를 고민하고 그걸 해결, 선도하려고 노력하는 게 훨씬 현명한 경영이다.”
△요즘 경영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골프장이 많다. 조언을 한다면.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그걸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시 여겼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카이72골프&리조트 김영재 사장이 좋은 롤 모델이다. 그는 골프장이 ‘왕갑’이던 시절에 골프장 경영을 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심히 살펴보고 그걸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서 지금은 세계 최고의 골프장 운영 노하우를 가진 조직을 구축했다. 자신들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골프장 최초로 경영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그 혁신 여정을 이끈 리더가 바로 김 사장이다. 그는 경영의 중심에 고객을 놓고, 과거부터 당연시 되던 골프장 관행을 깨나갔고, 결국 대한민국 골프문화를 바꾼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당연시 여기던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많은 골프장이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를 벤치마킹하지만 무늬만 가져 갈 뿐 그 실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무늬를 만든 원천은 김 사장이란 리더의 존재다. 리더가 변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좋은 골프장을 벤치마킹해 보라고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정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안성찬 골프대기자 golfahn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