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월스트리트와 백악관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처했다. 실적 부진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야 하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월가 투자자들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정책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자신의 주요 공약으로 내건 만큼 취임 이후 노골적으로 미국 기업들을 압박했다. 특히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고용 확대를 주문했다. 지난 1월 디트로이트의 빅3 자동차 제조업체로 꼽히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 경영진과 만난 것도 일자리 창출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향해 미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의 강경한 태도에 백기를 든 포드는 지난 1월 멕시코에 짓기로 한 공장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10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에서 자동차 판매가 정체된 영향으로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채용을 늘리기는커녕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오토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감소했다. 앞서 GM은 비용 절감을 위해 오는 5월 중순까지 1100명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GM의 척 스티븐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최근 실적이 저조하기 때문에 분명히 비용 절감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분명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포드도 감원에 가세했다. 15일 소식통에 따르면 포드는 전 세계 인력의 10%를 줄이는 계획을 구상 중이다.
미국 자산운용 와델앤리드의 프랭크 잠보이 금융 담당자는 “분명히 트럼프 행정부 초기이기 때문에 압박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러나 나는 포드가 트럼프 정부에 부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며 포드의 감원 계획을 찬성했다. 시장조사업체 LMC오토모티브의 제프 슈스터 수석 부사장은 “한쪽에서는 자동차 수요가 줄고 트럼프 행정부는 채용을 압박하고 있다”며 “투자자와 정부, 양쪽의 압박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RBC캐피탈은 미국에서 매출이 20% 줄어들면 연간 인건비는 10억 달러(약 1조1177억 원)까지 줄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포드와 GM의 현재 주가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 16일 GM의 주가는 주당 33.42달러로 마감했는데 이는 2010년 경영이 악화한 당시보다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포드 주가도 2010년 마크 필즈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하기 직전보다 40% 하락했다. 두 회사 모두 지난달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게 시가 총액을 추월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