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어색한 재회를 연출한다.
앞서 IT 기업 수장들은 지난해 12월 당선자 신분이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했다. 당시 회동에서 트럼프는 대선 당시의 갈등을 딛고 IT 기업의 혁신을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7개월이 지난 지금, IT 업계와 트럼프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하다. 트럼프는 실리콘밸리의 강한 반발에도 반(反) 이민정책을 펼치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에서도 탈퇴했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경제자문단에 합류했다가 ‘우버 앱을 삭제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는 등 역풍을 맞은 끝에 지난 2월 사퇴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트럼프가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것에 반발해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과 IBM 시스코 오라클 중역들이 실리콘밸리 내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자인 피터 틸 페이팔 공동 설립자와 함께 이번 회동에 다시 참석한다고 18일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전했다. 애플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이번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IT 기업 대부분이 이를 공표하지는 않고 있다.
사실 미국 IT 업계 수장들이 대부분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또 트럼프가 계속해서 실리콘밸리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다시 얼굴을 맞대는 것은 불쾌한 경험일 수도 있다. 트럼프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공공연하게 IT 업체 대표들이 회동에 불참해야 한다고 압박을 넣고 있다.
기업 CEO들의 트럼프 경제자문단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섬오브어스(SumOfUs)의 니콜 카티 캠페인 매니저는 “트럼프는 이미 취임한 지 약 150일이 지났다”며 “트럼프 정부 어젠다의 진실과 의도가 드러났는데도 IT 기업 CEO들이 이를 용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시민단체인 테크솔리더리티는 “이번 회의를 할 필요가 없다”며 “기술기업 종업원들이 이를 막을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와 논의의 장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이 회원사로 있는 인터넷협회의 지나 우드워스 공공정책·정부 담당 선임 부사장은 “어느 산업의 일원으로 있느냐에 상관없이 현 행정부와 교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일부 정책 이슈에서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생산적 토의를 통해서 긍정적인 공통 성과물을 내놓을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동에서 CEO들은 트럼프에게 반이민 행정명령과 파리협정 탈퇴 등에 대해서 입장을 돌려야 한다고 설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의 정치적 어젠다가 더욱 진보적인 세계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들 CEO들은 회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다른 업종과 비교해 IT 산업 종사자, 특히 엔지니어들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술을 가질 수 있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영진을 전면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IT 업체들은 회동과 별도로 트럼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로비스트, 정책 담당자들과 끈을 마련하는 데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마존은 트럼프의 플로리다 주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브라이언 밸러드가 워싱턴에 세운 밸러트파트너스의 첫 번째 고객이 됐다. 페이스북은 지난달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멤버이자 제프 세션스 현 법무장관의 측근이었던 샌디 러프를 정부 로비 담당 이사로 영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