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핵심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근로시간 52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새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일자리 정책'에 대한 ’노동 전문가‘ 송호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평가는 매서웠다.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고 최저임금을 1만원선까지 인상하면 최전선에서 부담을 짊어지는 것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다. 22일 제주도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7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송 교수는 이들에게 일자리 정책의 사회적 비용이 일거에 전가되는 것에 대해 “정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현 사회 모순에 대한 책임자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기업과 강성노조의 이익동맹’이다. 송 교수는 “자동차, 철강, 조선 부문 대기업의 강성노조는 자본을 밀어붙여서 기득권을 따내고 선을 그었다”면서 “선 밖에 있는 협력사의 노동자와 고용주를 배제하고 그 자신들끼리 이익을 독점했다”며 강연을 이어갔다.
이날 송 교수의 진단은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수년 간 조선업 불황을 거치며 내파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차그룹 등 지난세월 산업화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의 흥망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분석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조선업 도시인 울산과 거제는 ‘정규직의 제국’이다. 불평등의 피라미드는 상위 60%의 직영 노동자와 하위 40%의 하도급 노동자로 구성된다. 평소 정규직 임금의 70%를 받으면서 같은 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불황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해고된다. 충격을 받아내는 ‘쿠션’인 것이다. “최근 닥쳐온 불황 때문에 작년 울산과 거제에서 협력사 노동자 2만 명이 짐을 쌌다. 자살하는 사람도 나왔다. 같은 해 현대중공업 노조는 기본급을 올리라고 노동 투쟁했다. 내부 자구책을 만들기는 커녕 이미 8조나 투입된 정책자금을 또 수혈해달라고 했다. 도덕적 해이다,” 그는 날을 세웠다.
송 교수는 “연 임금을 1억씩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줄여서라도 떠나는 사람을 붙잡아야 했다”면서 “이 부담을 협력사 고용주와 노동자에게 떠넘기면 협력 중소기업들은 다 죽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득권을 가진 노동자들이 기득권에서 배제된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문제의 해법은 없다”면서 “현대중공업에서는 불황을 함께 이겨내려는 노동의 연대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연대 임금제’를 자발적으로 실천한 스웨덴 노조에서 드러나듯 건강한 노조일수록 동지애와 연대의식이 있다. 현대중공업 비정규직은 스스로를 ‘꼽사리 인생’이라고 부른다.
송 교수는 ‘진정한 일자리 정치’에 대해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면, 정부가 일자리를 지키고, 노동이 노사‧노노 연대를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를 위해 그는 “상위 10% 노조가 앞으로 5년 동안만이라도 임금을 동결하고 복지를 쪼개 그 이익을 협력사와 공유해야 한다. 이에 발맞춰 원청 대기업은 하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사용자들에게도 여유가 생기면 새 정부는 그때서야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을 ‘단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이런 노동 정책과 함께 정부는 상속세 감세, 고용장려금 지급, 에너지, 자제비 등 세액 공제 정책 등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을 키워주는 다양한 보조 정책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 방식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자신이 내세운 노동 정책을 완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럼에도 송교수는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말한다. 서두를수록 저항이 크고, 정책은 필패하기 마련이다. “기업을 풀고 노동을 규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다. 기업을 규제하고 노동을 풀어놓고 있다.” 그의 마지막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