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뭄이 여름까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전역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긴 가뭄에 농산물 피해가 커져 식탁물가가 치솟고, 일부 산업단지에서는 공업용수 부족으로 제한 급수를 시행하는 등 가뭄 피해가 전 산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도 긴급 가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장마가 빨리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 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어서 ‘천수답 대책’ 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정부와 관련기관에 따르면, 올봄 시작된 가뭄이 해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농업계뿐만 아니라 전 산업계로 피해가 확대하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전국 강수량은 평년(331㎜)의 69%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달 하순부터 장마 시즌에 돌입하지만, 비구름이 주로 남해안에 머물면서 생기는, 이른바 ‘마른장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뭄 탓에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현재 농업용 저수지 저수율은 42%로 평년(59%)보다 17%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바다를 메워 논을 만든 간척지의 경우는 염해 피해가 크다.
전국 쌀 생산량의 1%를 차지하는 서산( A·B 지구)과 태안(이원간척지) 등 총 1만253ha의 간척지 논에서는 농작물 최소 50% 이상이 염해 피해로 말라 죽고 있다. 이는 농업용수로 쓰는 담수호의 염도가 정상치의 2~12배 수준까지 뛰면서 생긴 현상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름현상이 발생하고 밭작물은 시들음 등 생육저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과일과 야채 가격이 들썩거리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집계한 올해 평균 과일 소매가격(상품 기준)은 지난해보다 수박이 1통에 1만9689원에서 2만1075원으로 올랐고, 참외도 10개에 1만6766원에서 1만8330원으로 뛰었다. 채소류인 양배추는 1포기에 3918원에서 4044원으로, 양파는 1kg에 1944원에서 2229원으로 상승했다.
공업용수가 부족해 비상이 걸린 곳도 있다.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히는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대산단지)에 하루 평균 필요한 공업용수는 20만t이다. 대산단지에 하루 필요한 공업용수 절반을 공급하던 대호호의 저수율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곳에 위치한 현대오일뱅크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모아둔 인공연못(Pond)까지 아껴 쓸 정도로 형편이 나쁘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가뭄이 지속하면서 공업용수에 쓸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당장은 물을 최대한 아끼고 저수시설의 물로 버틸 수 있지만, 장기화할 땐 걱정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도 추가 가뭄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6개 부처 장·차관 등이 참석하는 첫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고 가뭄 대응 상황과 추가 대책을 집중 점검했다.
이날 회의를 토대로 정부는 가뭄 발생 지역에 물 공급을 위한 긴급 급수대책을 추진하고, 가뭄 확산에 대비해 추가 대책을 마련·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매년 가뭄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땜질식 대책보다는 근본적 대안 마련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