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 성제(成帝)의 궁녀였던 반첩여(班??)는 문학적 자질을 타고나 여러 편의 부(賦:한문학 장르의 하나)와 시를 남겼다. ‘한서(漢書)’라는 중국 최초의 체계적 단대사(斷代史:한 시대dynasty의 역사)를 저술함으로써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과 더불어 중국의 양대 역사가로 추앙받는 반고(班固)의 대고모(고모할머니)인 반첩여는 성품이 어진 데다 총명하고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여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조비연(趙飛燕)이라는 날씬하기로 이름난 궁녀가 새로 들어오면서 반첩여를 향하던 성제의 총애가 조비연에게로 쏠리고, 반첩여는 별궁으로 밀려나 쓸쓸한 생활을 해야 했다. 반첩여는 이런 자신의 심경을 ‘원가행(怨歌行: 원망의 노래)’을 지어 표현하였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齊) 땅에서 나는 하얀 비단이 눈서리처럼 희고 곱구나./ 마름질하여 합환선(合歡扇:기쁨을 함께하자는 맹세를 담은 부채)을 만드니 둥글기가 밝은 달 같네./ 임의 품속과 소매를 드나들며 시원한 사랑의 바람을 일으키리./ 허나, 언제라도 두려울손, 가을이 되어 시원한 바람에 더위가 밀리면/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져 임의 은정이 끊기는 것.”
가을이 되면 부채가 상자 속에 버려지듯 자신도 조비연에게 밀려 버림받게 될 것임을 염려하고 또 한탄한 시이다. 마지막 구절의 원문은 “棄捐??中”이다. 글자는 차례로 ‘버릴 기’, ‘버릴 연’, ‘상자 협’, ‘상자 사’로 훈독한다. 여기서 ‘捐’을 ‘당한다’는 피동형으로 바꾸기 위해 앞에 ‘見(당할 현)’을 붙여 ‘見捐’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다시 그 뒤에 ‘가을 부채’라는 뜻의 ‘秋扇’을 붙여 ‘見捐秋扇(현연추선)’이라는 4자성어가 만들어졌다. ‘가을 부채, 버림받다’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가을 부채, 즉 秋扇은 ‘버림을 받은 여자’라는 의미로 쓰이는 성어(成語)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