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개인도 그렇지만 기업의 욕심은 한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고 하지만 요즘 주택관련 업계의 행태를 보면 탐욕스럽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로 호황 맛을 톡톡히 누렸던 주택업계가 서울시가 정한 아파트 층수 제한을 풀어 달라고 야단이다.
지금의 기준으로도 얼마든지 수익이 생기는데도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떼를 쓰는 모양처럼 느껴진다.
주택 관련 단체 회장을 지낸 J씨는 서울시 아파트 층수 제한 반대 서명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자료를 갖고 서울시를 압박할 계획이다.
요 몇년 주택개발을 통해 큰 돈을 번 P사의 K대표는 한 경제신문 기고를 통해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인 시대에 35층은 무엇을 얻거나 지키기 위한 제한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층수를 높이면 건물 동수가 줄어들어 그 사이로 바람과 햇빛이 비치고 답답함도 덜어진다고 서울시의 층수 규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압축도시가 대세이고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생활비가 적게 든다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외국의 한 자료까지 들어가며 층수 제한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주택 관련 모임 관계자 중에는 층수 제한을 동조하는 도시계획위원들이 문제라고 몰아 부치기도 한다.이들은 층수제한을 적폐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층수 규제 폐지론자들의 논리는 같은 건물을 높게 지으면 동(棟)간의 거리가 넓어져 그만큼 빈 공간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오히려 주거환경이 좋아진다는 거다. 그래야 재건축도 촉진돼 공급이 늘어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초고층으로 짓게 되면 공사비가 일반 건물보다 20~30% 비싸진다. 원가가 늘어나니 분양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완공 후 관리비도 많아진다.
게다가 화재 같은 재난에 매우 취약하고 특히 층수가 너무 높으면 주거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공법이 발전돼 지진 등은 어느 정도 방비할 수 있다 쳐도 건물이 노후화됐을 때의 처리 대안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재건축도 불가능하고 수선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그런 문제에 대해 초고층 예찬론자들은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우리의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해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난제를 그냥 가볍게 여길 사안은 절대 아니다.
주택업체나 재건축 조합원 개인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국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 주택문제도 그렇지만 도시계획은 더욱 미래를 내다보고 틀을 짜야 오류가 줄어든다.
주택업계는 왜 층수를 자꾸 높이려고 할까.
서울시가 정한 35층도 결코 낮은 게 아니고 더욱이 채산성도 얼마든지 맞출 수 있는데 말이다.
겉으로는 주거환경과 도시 스카이라인 개선을 들고 있지만 속셈은 수익에 있지 않나 싶다.
주택시장 기류가 초고층일수록 인기가 좋으니 분양가를 높여 이득을 더 챙기겠다는 것 아니냐는 소리다.
재건축 조합원도 자산가치가 높아진다 하니 마냥 초고층을 좋아할 뿐이다.
그렇다면 초고층의 인기가 계속될 거라는 보장은 있나.
없다. 인구도 줄고 주택에 대한 인식도 바뀐다.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앞으로 초고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고조되면 상황은 확 달라질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초고층 주장론자들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서울의 한 초고층 아파트에서는 초기 거주자들이 대거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사실 거주자 입장에서는 말 못할 사연이 적지 않을 게다. 집값이 떨어질까 봐 쉬쉬하고 있으나 내막은 여러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초고층 건물에 대한 부작용 관련 보고서는 많이 나와 있다. 당뇨·뇌졸증·우울증 등의 성인병 유발이 많다는 내용도 있고 벤젠이나 포럼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 생성 수치가 높다는 논문도 눈에 띈다.
그래서 1970년대 초고층 아파트 붐이 일었던 프랑스와 독일은 이런 문제 때문에 저층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한다.
이는 초고층의 자산가치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건물 높이가 적당해야 조망도 아름답다. 너무 올라가면 그냥 그림일 뿐이다. 초고층이 즐비한 부산 해운대 바닷가는 해무(海霧)에 시달리는가 하면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오는 고독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있다지 않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주택사업의 수익성은 높은 편인데도 왜 업체들은 목 말라할까.
업체마다 좀 다르지만 대개 매출 대비 수익률은 10% 정도 된다.
메이저급이 아닌 한 주택업체의 2015년 1분기 공식 매출 이익률이 11.8%로 발표됐다. 이는 다른 업체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뜻한다. 2015년 이후 주택시장은 초 호황국면을 나타냈으니 수익률은 아마 이보다 높지 않았을까 싶다.
더욱이 주택은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 매출 규모가 크다. 한 채에 3억원 하는 아파트 3300여 가구만 팔아도 매출액은 1조원이고 여기서 10%만 남겨도 순 이익은 1000억원이다.
주요 대형 업체의 주택 부문 매출은 5조~6조원 정도이니 이득이 얼마나 많겠는가.
사실 국내 시장에서 이 정도의 이익을 올리는 업종은 별로 없다. 과점 시장을 이용해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을 받을 판이다.
그렇다고 물건을 파는데 큰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서로 사려고 야단이니 판만 벌여 놓으면 대박이다.
이런 재미를 보고 있는 주택업계가 서울시 재건축 아파트 층수 규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니 모양새가 좋을 리가 없다.
도시 환경과 건축에 대한 식견이 조그만 있으면 주택업체들이 왜 초고층을 주장하는지 그 속뜻을 금방 알게 된다.
한강변에 성벽처럼 서 있는 지금의 고층 아파트만 봐도 답답한데 더 높게 올리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층수 규제 전에 승인을 받은 최고 56층 규모의 동부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수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말이다.
서울시는 2014년 ‘2030 서울 플랜’과 ‘한강변 관리기본계획’을 세우면서 3종 주거지역의 아파트 층수를 최고 35층으로 제한했다. 여의도·강남·용산 같은 도심권에서는 상업시설을 포함한 복합건물의 경우 50층까지 허용해 놓았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서울시 기준 안에서 아름다운 건물 디자인과 스카이라인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
획일적인 성냥갑 모양의 외관을 없애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주택업체들은 그동안 디자인 혁신보다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익 개념을 무시한 도시개발은 근절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