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취임식. 상투적인 일성에 많은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딱딱한 인사말에 별다른 관심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신임 장관이 미리 준비한 원고를 잠깐 내려놓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원고 없이 풀어내는 심경에서 신임 장관의 절박함과 진심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어진 취임 행사에서도 유 장관은 미리 준비한 원고나 틀에 짜인 겉치레를 거부했습니다. 기자실 브리핑룸에서는 손으로 턱을 괴거나, 소통을 강조하는 거침없는 언행 등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공식 행사가 끝나자, 몇몇 미래부 직원의 어깨에 손까지 올리면서 친근함을 드러냈지요.
장관의 이런 모습이 낯설었을 뿐, 결코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전임 장차관들이 심어준 선입견 탓에 유 장관의 모습이 어색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모든 게 낯설어 보입니다. 국가과학기술정책을 이끌어가야 할 주무부처 책임자이지만, 스스로가 과학 분야 ‘비(非)전문가’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역시 그의 그런 고백을 이끌어내고, 윽박지르기 위한 자리였으니까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학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산하 기관장들까지 서슴없이 우려를 내놓기도 합니다. 물론 새 장관을 둘러싼 그들의 하마평(下馬評)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자기들 밥그릇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심경이 엿보였으니까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행(慣行)’이라고 여겼던 여러 가지 인사 방식이 깨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이 맡아야 한다는 선입견, 외교부 장관은 외무고시 출신이 올라야 한다는 편견 등이 보기좋게 깨지고 있습니다.
이제껏 미래부 장관은 물론 이전의 과기부처 수장까지 모두가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과학자’였고, 논문을 줄줄이 풀어냈던 학계 교수들이었지요.
그러나 ‘전문가’임을 강조했던, 과학자라는 위상을 등에 업었던 그들이 이끈 과학기술 정책은 어땠나요? 현실을 외면한 연구 정책 탓에 실험실에서 땀을 흘리는 과학자들은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전문가의 관심 밖에 존재했던 우정사업본부 집배원들은 어땠나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밤잠을 줄여 가며 근무하던 이들은 돌연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당장 부처 정책 수립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름 과학자와 전문가를 자처했던 이들이지만, 비현실적인 정부 정책 기조에 별다른 이의 없이 동조하고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예컨대 과기처를 시작으로 국가과학기술 정책을 이끌었던, 엘리트 가운데 엘리트였던 미래부 핵심 인재들은 이제 고향과도 같은 부를 떠나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엉뚱하게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분야에 투입됐다가 이들의 업무가 중소기업벤처부로 옮겨 가게 됐으니까요. 이게 지금까지 전문가 장관들이 이끌었던 미래부의 현실입니다.
신임 장관이 취임했지만 여전히 미래부 안팎에는 비(非)전문가 장관을 우려하는, 아니 시기하는 눈길이 존재합니다. 새 장관이 이러한 편견이 기우에 그쳤음을 보여 주기를, 연구와 정책 현장으로 성큼 다가서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