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발(發) 아시아 외환위기가 4일(현지시간)로 20주년을 맞았다. 외환위기 당시, 세계 경제성장의 중심지로 기대를 모으던 아시아 각국은 자국 통화 가치 폭락 속에 심각한 경기침체와 생활고를 겪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위기의 진원지였던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은 다시 성장궤도에 올랐지만 그 한편으로는 기업과 가계 부채 팽창으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긴축에도 대비해야 하는 등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3개국은 2000년 5월 아시아 외환위기 재발을 막고자 자국 통화 급락 시 미국 달러화 등을 융통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통화 교환 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ㆍCMI)’에 합의했다. 처음에는 양국 간 협정을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였지만 2010년에는 이를 다자간 협정으로 발전시켰으며 2014년에는 총 재원을 2400억 달러(약 271조 원)로, 이전보다 두 배 확대했다. 자금 흐름과 거시경제 상황, 금융건전성 등을 모니터링하는 ‘아세안+3 거시경제 조사기구(ASEAN+3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ㆍAMRO)’도 2011년 설립했다.
지난해 10월 AMRO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아시아에 새로운 외환위기가 오는 것을 시나리오 삼아 협력 방안을 점검하는 CMI 첫 합동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외부 충격이 아시아를 뒤흔드는 위험이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와의 협력 외 아시아 각국은 내실 다지기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20년 전 외환위기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꼽혔던 경상수지 적자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진원지였던 태국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이 8%에 달했지만 지난해엔 경상수지 흑자가 468억 달러로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외환위기 당시 달러화가 고갈됐던 쓰라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외환보유고도 적극적으로 확충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 5개국과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지난해 말 기준 총 8755억 달러로, 20년 전보다 7배 늘었으며 대출 기간 1년 미만의 단기 외채를 상환해도 절반 이상이 남는다고 분석했다.
위라타이 산띠쁘라홉 태국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5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1997년과 같은 위기를 다시 맞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의 이나가키 히로시 주임 연구원도 “아시아 경제 기반은 강해져 위기 재발 위험이 현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으며 경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거듭 강조했다. 1993~1998년 인도네시아중앙은행 총재였던 J.소에드라자드 디완도노는 최근 미국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가 현재 너무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주요국 중 유일하게 경상수지 적자 상황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나집 라작 총리 일가가 연루된 국부펀드 ‘1MDB’ 자금 유출과 비자금 조성 스캔들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국 바트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올 들어 지금까지 약 6% 올랐다. 이에 수출 비중이 큰 태국 경제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태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이른다.
나카오 다케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는 “아시아 각국은 20년 전보다 강하지만 자만하지는 말아야 한다”며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경 간 자본 흐름과 자국 부채 증가, 인플레이션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과 인프라 등의 부문에서 재정적 지원책도 펼쳐야 한다”고 권고했다.
여전히 마크 모비어스 템플턴 신흥시장 그룹 회장은 외환위기 20주년을 맞은 아시아의 미래를 비교적 낙관했다. 그는 “많은 국가와 기업, 개인이 외환위기로부터 혹독한 교훈을 얻어 외환보유고를 쌓고 GDP와 기업 실적 대비 외채 부담을 더는 것에 주력했다”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신흥국의 전망이 매우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