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는 ‘저승에서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죽은 사람의 넋을 데리러 오는 심부름꾼’을 지칭하는 말인데, 네 글자를 다 한자로 쓸 수는 없고 반반씩 사용하여 ‘저乘使者’라고 쓸 수밖에 없다. ‘使者’는 ‘부릴 사, 심부를 사’ 와 ‘놈(사람) 자’로 이루어진 단어로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의 한자어이지만, 저승은 순수한 우리말도 아니고 한자어도 아닌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저승의 ‘저’는 ‘저것’, ‘저편’, 즉 ‘that’이라는 뜻의 지시대명사이다. ‘승’은 ‘生(살 생)’에 어원을 둔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저승은 곧 ‘저 생’이고 ‘저 생’은 바로 ‘저편의 삶’이라는 뜻이다. 저승의 반대말은 이승인데, 이승은 곧 ‘이 생(生)’, 즉 ‘이편의 삶’이다. 이승의 ‘이’ 역시 영어의 ‘this’와 같은 의미의 지시대명사인 것이다. 나중에 ‘이 생’과 ‘저 생’의 ‘生’이 불교 용어인 ‘승(乘)’으로 대체되어 이승과 저승이 되었다.
‘승(乘)’은 이 생사의 고해를 벗어나 마침내 도달하게 된 깨달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로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乘’이 곧 그런 의미이다. 따라서 ‘이승(乘)’과 ‘저승(乘)’은 ‘이 깨달음의 세계’, ‘저 깨달음의 세계’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노력을 해야 하고 ‘저세상’에 가서도 깨달음을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불교의 교의(敎義)가 강하게 담겨 있다.
이승을 마치고 저승에 가면 다시 심판을 받아 좋은 곳으로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없는 고통을 받는 곳으로 가기도 한다고 가르치는 게 종교이다. 종교의 힘으로 이승의 인간들을 도덕적으로 살게 하고자 저 건너편의 저승을 설정한 것이다. 꼭 종교적 의미의 저승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저 인간 자신의 힘으로 현세를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는 의지를 키워야 할 것이다. 천성이 선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교육이 바로 그런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