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64) 여성가족부 장관은 역사학자이자 여성문제, 양성평등, 노동정의 실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해 활동해온 시민운동가다.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대모’로 꼽힌다. 검소하면서도 소탈한 성품으로 폭넓은 대인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운영 등 확고한 성(性)평등 실현 의지를 드러내면서 여성가족부 장관의 책임과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30년간 현장 뛴 ‘여성운동의 대모’… 성평등 실현에 앞장 = 정 장관은 30여 년간 성평등 관점에서 역사와 노동 문제를 연구하며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동대학원 서양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보훔대 독일현대사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1984년 경기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1986년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겨 교직생활을 이어갔다.
오랜 기간 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구체적인 문제점을 파악해 지적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1989년부터 10년간 한국여성연구회(현 한국여성연구소)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1997년부터 4년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또 2002년부터 6년간 국내 대표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공동대표를 지낸 데 이어, 2010년부터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도 맡았다.
정 장관은 2007년 여연 공동대표 시절 2차 남북정상회담 여성분야 특별수행원으로 발탁돼 당시 김화중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 평양을 다녀온 바 있다.
정부의 여성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정부 주요 인사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여성부 정책자문위원과 통일부 정책평가회의 위원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서는 여성부 차별개선위원회 위원과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 남북교류 협력추진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대외활동을 해왔지만, 학술연구는 여성분야에 집중됐다. 국내 여성운동 초창기인 1997년 서구 여성운동사 개론서인 리처드 에반스의 ‘페미니스트’를 번역해 소개했다. ‘서양의 가족과 성’, ‘민족과 페미니즘’,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 등을 펴내며 저술활동을 했다.
정 장관은 지난달 7일 여가부 장관 취임사에서 “그간 사학자로서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다양한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왔다”며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 풍토 속에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돼 온 여성의 문제는 평생의 가장 큰 화두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이제 새 정부와 함께 실질적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됐다”며 “성평등을 사회 핵심 의제로 만드는 것부터 제 역할을 시작할 것”이라고 실질적 성평등 실현의 의지를 드러냈다.
◇여성 일자리 확대·경력단절 예방에 주력 = 정 장관은 여성일자리 확대와 경력단절 예방을 중점 사업으로 삼고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다.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경력단절을 예방해 고용유지 비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임신·출산·육아기인 30~35세에 다소 떨어졌다가 40대 이후에 다시 증가하는 M자 형태를 띤다. 그간 정부는 경단녀를 사회로 불러내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실에서 경단녀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정 장관은 평소에도 “좋은 여성 일자리 마련과 함께 경력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게 중요하다”며 “새로일하기센터를 추가 설립하고, 직업훈련 추가운영, 취업설계사와 경력단절 예방상담사 배치 등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 정 장관은 사회 문제로 꼽히는 안티페미니즘과 여성혐오 문제에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정 장관은 “여성 혐오에는 일자리문제, 주택 문제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며 “여가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고 확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합의 재검토 노력… “여성사 박물관 건립할 것” = 정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와 이 과정에서 탄생한 ‘화해치유재단’ 사업에 대해 재검토 의지를 드러냈다. 위안부 박물관 설립과 함께 여성사 박물관 설립도 임기 내 이뤄내야 할 목표로 설정했다. 취임 후 첫 행보로 위안부 거주시설인 ‘나눔의 집’을 찾은 것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주요 과제로 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는 건 분명하다. 재협상을 통해서 다음 단계로 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외교관계는 상대적인 것이라 잘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외교부와 함께 지혜를 모아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 장관은 역사학자인 만큼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보존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로 여긴다. 정 장관은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임기 내에 위안부 박물관과 여성사 박물관 설립을 임무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전쟁과 여성 폭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주요약력
△부산 △이화여고, 서울대 역사교육학과·서양사 석사, 독일 보훔대 독일현대사 박사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통일부 정책평가회의 위원 △여성부 정책자문위원 △여성부 차별개선위원회 위원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및 공동대표 △한국여성사학회 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