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11일 자진 사퇴했다. 과학기술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 온 박 본부장은 이날 저녁 출입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쓴 5페이지짜리 '사퇴의 글'을 보내 사퇴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직 고위 인사 가운데 스스로 물러난 첫 번째, 공직후보자까지 포함하면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세번째다.
박 본부장은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저를 본부장으로 지명해주시고 대변인 브리핑으로 또다시 신뢰를 보여주신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며 "11년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고 말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에 관한 본인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사과의 뜻을 다시 밝혔으나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사건이 제 임기(청와대 정보과학기술비서관 재직) 중에 일어났다고 해서 황우석 논문 사기 사건의 주동자나 혹은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이어 "임기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삶의 가치조차 영원히 빼앗기는 사람은 정부 관료 중 아마도 저에게 씌워지는 굴레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어렵게 만들어진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서 과학기술인의 열망을 실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은 7일 임명이 발표됐으나 세계 과학 역사상 최악의 연구부정행위 사건 중 하나인 '황우석 사태'에 깊이 연루된 인물이라는 점이 부각돼 사퇴 압력을 받아 왔다.
순천대 교수 출신인 그는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을 지낸 데 이어 2004년 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맡으면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또 보좌관 재직 당시 실제 연구 기여 없이 황 전 교수가 2004년 낸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점, 황 전 교수로부터 전공과 무관한 연구과제 2개를 위탁받으면서 정부지원금 2억5천만 원을 받은 점도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인단체들과 시민단체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당 등은 박 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해 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상당수도 청와대에 부정적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본부장의 사퇴는 문재인 정부가 정식으로 임명한 주요 고위 인사 중 첫 사례다. 또 공직후보자까지 포함하면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세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