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혈압치료제 처방시장에서 ARB와 CCB 계열 약물을 결합한 복합제가 가파른 상승세로 지난 몇 년새 전체 시장 판도를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단일제 제품의 처방 성장세는 주춤했고 새로운 조합의 복합제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여전히 복합제보다는 단일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정보는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코아제타의 처방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코아제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매년 145만명의 진료·처방 정보를 구매해 분석한다. 145만명의 진료·처방 데이터는 전체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라서 통계적으로 99.9% 이상의 정확도를 나타낸다. 사실상 실제 건강보험 처방 정보를 반영한 '리얼데이터'인 셈이다.
19일 코아제타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고혈압치료제 시장 규모는 총 1조6300억원으로 전년(1조5296억원)보다 6.1% 늘었다. 2013년 1조5469억원에서 2년 연속 정체를 보이다 지난해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고혈압치료제의 사용량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고혈압치료제 총 투약일수는 35억3722만일로 2015년 33억8926만일보다 4.4% 늘었다.
투약일수는 약물의 사용량을 비교하기 위한 유용한 자료다. 흔히 사용량의 지표로 제시되는 처방량 데이터의 경우 1일 3회 복용 약물이 1일 1회 복용 약물보다 3배 많은 수치로 나타나는 것처럼 왜곡이 발생한다. 약효가 오래가는 약물이 적게 팔린 것처럼 계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환자 수 자료의 경우 환자마다 약물 복용 기간이 달라 정확한 사용량을 분석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고혈압치료제 유형별 처방금액을 살펴보면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계열)와 칼슘길항제(CCB 계열)를 결합한 'ARB+CCB' 복합제가 가장 많은 5048억원어치 처방됐다. 지난해에만 229만2537명의 환자가 1482만건의 진료를 통해 'ARB+CCB' 복합제를 처방받았다.
'ARB+CCB' 복합제는 주로 '암로디핀' 성분의 CCB 계열 약물과 ‘로사르탄’, ‘발사르탄’, ‘텔미사르탄’, ‘올메사르탄’, ‘피마사르탄’ 등 ARB계열 약물의 결합한 제품이다. 'ARB+CCB' 복합제는 지난 2007년 노바티스의 ‘엑스포지’(발사르탄+암로디핀)이 가장 먼저 국내에 출시됐고 2009년 발매된 한미약품의 간판 복합신약 ‘아모잘탄’(로사르탄+암로디핀)도 유사 조합의 고혈압복합제다.
이후 엑스포지의 제네릭 제품을 비롯해 100개 이상의 ‘ARB+CCB' 조합 복합제가 등장했다. 국내사가 개발한 유일한 고혈압치료제인 보령제약의 '카나브'(성분명 피마사르탄, ARB계열)도 이뇨제, CCB, 고지혈증치료제 등을 활용한 다양한 조합의 복합제를 선보인 상태다.
’ARB+CCB' 복합제의 지난해 처방금액은 3년 전인 2013년(3275억원)보다 54.1% 성장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다. 2013년 ’ARB+CCB' 복합제의 처방금액 규모는 ARB, CCB 단일제에 이어 3위에 불과했지만 2014년부터 3년 동안 22.6%, 9.6%, 14.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고혈압치료제 시장에서 독주체제를 갖췄다. 전체 고혈압치료제 시장에서 ’ARB+CCB' 복합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21.2%에서 지난해 31.1%로 치솟았다.
’ARB+CCB' 복합제 중 지난해 기준‘발사르탄+암로디핀’ 복합제가 가장 많은 2299억원의 처방금액을 기록했다. 엑스포지와 제네릭 제품이 이 조합에 해당하며 국내사 100여곳이 엑스포지 제네릭을 출시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트윈스타’와 종근당의 '텔미누보'가 대표 제품인 ‘텔미사르탄+암로디핀’ 복합제가 1242억원어치 처방됐고 ‘아모잘탄’과 같은 ‘로사르탄+암로디핀’ 복합제는 778억원의 처방금액을 기록했다.
지난해 고혈압치료제 처방금액 2, 3위는 각각 ARB 단일제(3484억원)와 CCB 단일제(3135억원)가 뒤를 이었다. ARB 단일제와 CCB 단일제 모두 전반적으로 하락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ARB 단일제는 2013년 3700억원에서 지난해 3484억원으로 5.8% 감소했고, 같은 기간 CCB 단일제는 3615억원에서 3135억원으로 13.3% 줄었다. 노인 인구 증가로 고혈압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지만 기존에 단일제를 따로 복용하든 환자들이 ’ARB+CCB'복합제와 같은 강력한 혈당 강하 효과를 나타내면서 복용 편의성이 높은 제품으로 약물을 변경하면서 시장 판도도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ARB계열 약물과 이뇨제 성분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을 결합한 ‘ARB+HCTZ' 복합제의 경우 지난해 2313억원어치 처방되며 여전히 높은 점유율(14.3%)을 기록했지만 2013년 2997억원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알파·베타차단제, 베타차단제, ACE저해제의 처방 규모가 매년 큰 변동이 없었고 ARB계열 약물과 스타틴 계열의 고지혈증치료제를 섞은 ‘ARB+스타틴'과 ’ARB+CCB'에 이뇨제를 추가한 ’ARB+CCB+HCTZ' 복합제 등 새로운 유형의 복합제 제품들이 점차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한만한 변화다.
고혈압치료제의 투약일수를 살펴보면 지난해 CCB와 ARB단일제가 각각 8억6317만일, 7억150만일로 1, 2위를 기록했지만 ’ARB+CCB' 복합제의 상승세가 돋보였다. ’ARB+CCB' 복합제는 2013년 3억5917만일에서 지난해 6억335만일로 68.0% 늘었다. 같은 기간 CCB 단일제는 12.5% 줄었고 ARB 단일제는 8.2%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성장세다.
의료기관 종별 고혈압치료제 처방 자료를 보면 미묘한 차이가 감지된다.
지난해 처방금액 기준 의원급에서 가장 많은 9465억원 규모의 고혈압치료제가 처방됐고 종합병원(2711억원), 상급종합병원(2134억원), 병원(977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의료기관 규모가 클수록 ARB 단일제를 선호했고 접근성이 높은 소규모 의료기관은 ’ARB+CCB' 복합제 비중이 컸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ARB 단일제가 가장 큰 27.7%를 차지했고 ’ARB+CCB' 복합제는 20.1%에 그쳤다. 의원급에서는 ARB 단일제의 점유율은 19.3%에 불과했지만 ’ARB+CCB' 복합제는 34.6%를 점유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