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몸집은 작아도 기술은 세계챔피언” 토종 엘리베이터 中企

입력 2017-10-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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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엘리베이터협회 “승강기산업 규제하는 행안부에서 경제 부처로 이관 절실"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현대엘리베이터 등 다국적 대기업이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의 85% 이상을 점유한 가운데, 15% 남짓한 좁은 내수시장과 해외를 무대로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승부수를 던진 강소기업들이 있다.

송산특수엘리베이터와 한진엘리베이터는 완제품 생산능력이 있는 10여개 국내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중에서도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이들은 “고품질의 부품과 시공실적, 관리보수 서비스 등 우리 중소기업 경쟁력은 해외에서 먼저 알아볼 정도로 뛰어난데 국내 소비자들은 여전히 다국적 대기업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높다”면서 “어떻게 중소 브랜드에 대한 사용자 인식을 개선할 것인지가 업계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재권만 수십여건, 750인승 골리앗엘레베이터로 전 세계 이름 알린 송산특수엘리베이터 = 20일 방문한 경기 시흥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본사와 공장 곳곳에는 ‘승강기 주권을 되찾자’는 표어가 붙어 있다. “예전엔 97% 자급율을 보였던 국내 승강기 시장이 현재 80% 이상 수입에 의존합니다. 이대로라면 100% 수입에 의존하는 에스컬레이터 산업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죠.” 김기영 대표(한국엘리베이터협회장)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20일 경기 시흥 공장에서 테스트 중인 엘리베이터 제어부 앞에서 김기영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독자 기술력을 개발해 승강기 주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전효점 기자 gradually@
▲20일 경기 시흥 공장에서 테스트 중인 엘리베이터 제어부 앞에서 김기영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독자 기술력을 개발해 승강기 주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전효점 기자 gradually@

29세에 오티스의 연구개발(R&D) 이사 자리를 꿰찰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김 대표가 돌연 사직하고 이듬해인 1994년 송산을 설립한 후 20여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다. 2014년 개발한 300인승 골리앗엘리베이터는 송산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이를 비롯해 영하 70도 초저온 냉동창고에서도 운행하는 엘리베이터, 평상시엔 승객용으로 쓰이다 화재시 연기와 열을 차단하는 고층건물 긴급구난용 엘리베이터, 병원이나 반도체·바이오 공장에서 쓰이는 멸균용 클린 엘리베이터 등 김 대표가 직접 연구 개발한 특수엘리베이터만 수십 종, 송산이 보유한 지적재산권만 해도 수십여 건이다. 김 대표는 “현재 파주 디지털시티 LG디스플레이에 40톤 규모 500인승 골리앗엘레베이터 설치가 진행 중”이라며 “러시아 키롭스크 광산 지역에서는 지하 500m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최신 사업에 대해 귀띔했다.

회사는 2000년 처음 해외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 현재 2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올해 예정된 매출 220억원 중 약 4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김 대표가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은 엘리베이터 산업이 가장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대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기술력을 의존하면서 국내 승강기 주권을 외국에 거의 내주고 말았다”는 그는 “기술력을 통해 잃어버린 국내 시장과 산업 주권을 되찾아오는 것이 숙원”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 하도급 ‘NO’, 100% 국산부품 자체 제작, 자체 브랜드 생산하는 한진엘리베이터 = 경기 김포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는 한진엘리베이터는 1987년부터 국내 엘리베이터 업계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1995년에 법인으로 전환하고 1997년 현 김포공장을 설립한 후 차근차근 기술력을 쌓아 직원 60여명에 매출 200억 원 규모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20일 경기 김포 공장에서 만난 박갑용 한진엘리베이터 대표는 “처음에는 다소 부족했던 기술력이 사업을 하면서 누적돼 이젠 대기업에 비해 앞서는 것도 많다”면서 자랑스럽게 회사를 소개했다. 사진=전효점 기자 gradually@
▲20일 경기 김포 공장에서 만난 박갑용 한진엘리베이터 대표는 “처음에는 다소 부족했던 기술력이 사업을 하면서 누적돼 이젠 대기업에 비해 앞서는 것도 많다”면서 자랑스럽게 회사를 소개했다. 사진=전효점 기자 gradually@

박갑용 대표는 “대기업은 돈을 주고 기술력을 사오지만 중소기업은 기술을 하나하나 직접 개발한다”면서 “처음에는 다소 부족했던 기술력이 사업을 하면서 누적돼 이젠 대기업보다 앞서는 것도 많다”고 자랑했다. 박 대표는 지금도 생산현장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손에 직접 기름을 묻히고 직원들을 관리한다.

대기업들이 규격화된 인송용 엘리베이터를 한다면 한진의 주력 생산품목은 비규격화된 화물용, 대형 엘리베이터다. 주문형 생산이 대부분인 이 부문에서 한진은 2~4인승의 소형 엘리베이터부터 화물용 엘리베이터까지, 원자재 가공부터 조립까지 전 과정을 직접 생산한다. 회사는 업계 대기업의 하도급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자체 브랜드로 수주를 받아 생산, 판매한다.

한진엘리베이터의 기술력은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작년 이라크와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지에서 먼저 한진에 러브콜을 보내 50만 달러의 첫 수출이 이뤄졌다. 올해도 9월 기준 이미 30만불의 수출이 이뤄지는 등 해외 매출이 확대되는 추세다. 박 대표는 “매출 대비 수출 비중을 30%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내수 수요‧생산력‧기술력 3박자 맞아떨어진 국내 시장…노동력‧대기업‧행정규제 아쉬워” = 김기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는 “한국은 엘리베이터 산업이 가장 잘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대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기술력을 의존하면서 국내 승강기 주권을 외국에 거의 내주고 말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규 설치 대수로만 세계 5위에 달하는 풍부한 내수 수요, 소프트웨어‧전기전자 부문의 인적 자원, 납기일을 준수하는 생산성 등이 이런 국내 시장의 장점이다.

반면 요즘은 기업하기 힘든 부분이 늘어가고 있다. 노동력 부족과 대기업과의 경쟁, 과도한 행정 규제가 그것이다. 박갑용 한진엘리베이터 대표는 “엘리베이터 생산일이 전문적이라 사람수에서 매출력이 나온다”며 “늘 사람을 찾고 있지만 아무리 돈을 주겠다고 해도 온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사업 확장에 애를 먹는다”고 토로했다.

▲엘리베이터 산업 내 대-중소기업 시장점유율 추이. (자료=한국엘리베이터협회)
▲엘리베이터 산업 내 대-중소기업 시장점유율 추이. (자료=한국엘리베이터협회)

독과점 글로벌 대기업들과의 경쟁 환경도 갈수록 녹록지 않다. 대기업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영업직원 이외의 비정규직 딜러들을 대거 고용, 단납기 시장에서 1~2대의 물량까지도 싹쓸이해가는 형편이다. 장주성 한국엘리베이터협회 전무는 “상대적으로 영업력이 뒤처지는 중소기업들은 저인망식 그물처럼 영업하는 대기업 딜러들의 출현으로 남은 시장마저 빼앗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이 미처 들어가지 못하는 10% 남짓 국내 시장에서는 70여곳 중소기업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엘리베이터협회는 사업 부문을 확장하기 위해 분속 105m 이하 엘리베이터 시장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동반성장위원회에 신청해놓은 상태다. 적합업종 지정여부는 국내 엘리베이터업계의 향후 생존 여부를 가름할 전망이다. 박 대표는 “관수에만 목숨 걸면 더 이상 위험하다”며 “민수 시장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는데도 정부는 걸림돌만 되고 있다. 승강기 산업은 이명박 정부 이래 주무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안정행정부로, 다시 국민안전처에서 행정안전부로의 이관을 반복해왔다. 장 전무는 “규제를 남발하는 행안부 대신 승강기를 산업으로 보고 지원·육성하는 산업부나 중기부로의 이관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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