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전문가나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요즈음에는 책을 내는 사람이 많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쓴 글을 책으로 엮어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어려움을 이겨낸 생활 수기나 투병기 등을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선거철만 되면 책을 출간한 후 ‘출판기념회’를 여는 정치인들도 있다.
그런데 자신이 지은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할 때 책의 안표지에 흔히 책을 받을 분의 이름을 써서 ‘○○○ 선생님 혜존’이라는 식으로 ‘혜존’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요즈음 젊은 층에서는 ‘혜존’이라는 말 대신에 ‘○○○ 선생님께’, ‘○○○에게’라고 쉽게 쓰는 경우가 더 많고, 이른바 ‘팬 사인회’에서는 그냥 자신의 사인만 해서 나누어 주기도 한다.
혜존은 ‘惠存’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은혜 혜’, ‘보존할 존’이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은혜로 보존해 주세요”라는 뜻이다. 즉 자신의 책을 받아서 잘 간직해 주신다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겠다는 뜻의 겸사(謙辭:겸손한 말)인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는 받을 분을 향해 정중하게 ‘혜존’이라는 말까지 써놓고선 바로 뒤이어 주는 사람의 이름을 쓴 다음에 ‘증(贈)’, 즉 ‘○○○ 贈’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틀린 말은 아니나 ‘혜존’이라는 겸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呈’ 혹은 ‘奉呈’이라고 쓰는 것이 훨씬 걸맞다. ‘贈’은 ‘줄 증’이라고 훈독하며, 일반적으로 그냥 ‘준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呈’은 ‘드릴 정’이라고 훈독하는 글자로, 매우 공손하게 드린다는 뜻이며, ‘奉(받들 봉)’과 함께 쓴 ‘奉呈’은 ‘받들어 드림’이라는 뜻이니 더욱 공손한 겸사이다.
그러므로 이왕에 앞에서 상대방의 이름 뒤에 ‘혜존’이라는 말을 썼다면 뒤에 자기 이름을 쓴 다음에 ‘呈’ 이나 ‘奉呈’이라고 쓰는 것이 더욱더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