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덤을 기억하라”…‘세계 판매 1위’ 도요타는 왜 위기 경영에 돌입했나

입력 2017-12-06 11:27 수정 2017-12-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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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시대, 구글·애플과 경쟁할 때” 3개월 빨리 임원급 인사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자동차 판매 세계 1위’ 위업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위기 경영에 돌입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임원 90여명이 모인 회의실에서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강력한 결단과 고통을 수반한 행동이 필요하다”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덧붙여 “역할을 잘 몰라 고객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바로 무대에서 떠나달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8일 후인 28일, 도요타는 80명 규모의 내년도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다. 통상 1월에 부장 이하급, 4월에 임원 인사를 단행하던 것을 감안하면 임원진 물갈이는 3개월 이상 빨리한 셈이었다. 더구나 인사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미국의 인공지능(AI) 전문가,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법인 금융전문가, 도요타통상의 아프리카 통(通) 등 외부 인재를 대거 발탁했고, 연령대도 40~70대로 폭넓었다.

도요타가 이처럼 파격 인사를 단행한 배경에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위기감이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도요타는 세계 판매 1025만 대로 5년 연속 성장이 기대되지만, 그 한편에서는 세계 자동차업계 환경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아키오 사장은 성명을 통해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키오 사장이 이처럼 위기 의식을 숨기지 않은데에는 도요타자동차가 탄생한 8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5일 전했다. 도요타자동차의 모태는 방직 사업이다. 아키오 사장의 증조부인 도요다 사키치는 1918년 아이치 현 나고야 역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도요타방직을 설립해 자동직기 연구와 제조, 방직업을 전개했다. 발명가이기도 했던 사키치는 직기 개발에 일생을 바쳐 취득한 특허만 84건에 이른다.

하지만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는 영국 산업혁명의 발원지였던 잉글랜드 북서부 맨체스터 주의 올덤에 연수를 다녀오고나서 기존 방직산업이 몰락할 것을 예감했다. 올덤은 19세기 세계 방직산업의 중심지로 당시 지역 경제는 절정기를 맞았다. 면직물 생산량은 독일과 프랑스를 합한 것보다 많았다. 그러나 1929년에 기이치로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황폐하기 그지 없었다. 레이온 등 저가 화학섬유의 대두와 경기 불황으로 올덤은 실업률 3%의 황량한 도시로 전락해있었던 것. 기이치로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몇년 새 쇠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그것이 사업을 대전환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그 길로 기이치로는 도요타방직 내에 벤처조직인 자동차부를 만들었다. 당시는 일본 국내 신차 중 거의 100%가 미국 포드자동차 등 외산이었다. 일본산 자동차 제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부품도 일본산을 고집하다보니 차가 한 대도 팔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66만㎡의 부지에 월 2000대를 일관 생산하는 고로모공장에서 양산의 토대를 닦고자 했으나 불황과 파업이 겹쳤다. 그러다가 1952년 도요타그룹 경영을 총괄해온 기이치로와 매형이자 초대 사장인 도요다 리사부로가 2개월 차이로 연달아 사망하면서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아키오 사장은 “창립 멤버들은 비판을 받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도요타는 없었을 것”이라며 위기 경영 의지를 불태웠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 블룸버그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 블룸버그

도요타는 양산 차량 시리즈를 늘려가며 입지를 넓혀 오늘날에 이르렀다. 1997년에는 세계 최초로 엔진과 모터를 병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HV)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2012년 이후는 HV 세계 판매가 연간 100만 대를 넘었고, 일본에서는 판매차 전체의 40%를 HV가 차지했다. 현재 도요타의 직원은 전 세계에서 36만 명이 넘으며, 매출의 90%를 자동차 사업이 차지한다. 2016년 세계 판매는 1017만 대로 4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그 사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차량공유 등 새로운 변화의 파도가 밀려왔다. 도요타의 경쟁사는 이제 포드나 제너럴모터스(GM)이기보다는 구글이나 애플 등 이업종의 거인들이다. 도요타의 부사장급 연구원이자 AI 전문가인 길 프랫은 “컴퓨터의 진화는 자동차와 다르다”며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창조적인 파괴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도요타가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지 80년. 과거에 비해 자본과 인력 규모는 커졌지만 거대한 조직이다보니 변화에 대한 대응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내 승용차 생산이 10% 줄어들면 실질 국내총생산에서 4조 엔, 고용은 4만 명 이상이 사라진다”고 분석했다. 도요타가 흔들리면 일본 경제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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