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권 유관기관과 힘을 모아 코스닥시장 붐업에 나선다. 코스닥 상장 문턱을 자본잠식 기업까지 대폭 완화하고 대규모 성장사다리 펀드도 조성한다. 전체 증시를 아우르는 통합 주가지수도 개발해 기관투자자의 자금 유입도 유도한다. 이와 함께 코스닥 기업의 회계처리 감시를 강화하고 위법 기업은 일벌백계해 시장 신뢰를 제고한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정부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 혁신을 위한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의 세부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코넥스ㆍ코스닥 상장사들과 만나는 현장간담회 자리에서 코스닥 부흥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바 있다.
◇혁신성만 갖추면 적자기업도 '상장' = 금융위는 초기 스타트업들의 코스닥 입성을 가로막던 계속사업이익과 자본잠식, 설립경과년수 등 3가지 필수요건을 폐지했다. 더 나아가 △세전매출액 100억 원 이상 및 시가총액 300억 원 이상 △시가총액 1000억 원 이상 △자기자본 250억 원 이상 등 3가지 요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증시 상장이 가능하도록 단독 상장요건을 신설했다.
이같은 파격 조치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에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가령 국내 대표 저비용비행사(LCC) 상장사인 진에어나 제주항공은 현재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설립 초기 비행기 구매·리스 등 대규모 시설투자로 한 때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후 매년 높은 이익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자본잠식 해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금융위는 이번 상장요건 개편으로 비상장 외부감사대상 기업 중 약 2800개 기업이 잠재적 상장대상으로 신규 편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잠정 상장대상 기업은 기존 4454사에서 7246사로 62.7%(2792사)가 늘어난다는 전망이다.
더불어 성장성 높은 적자기업의 상장을 유도하는 ‘테슬라 요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상장주관사가 주가가 일정 기간 이상 공모가 이하로 맴돌 경우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주식을 되사주는 풋백 옵션 부담도 면제해준다. 당초 투자자 보호장치로 마련됐으나, 과도한 부담으로 증권사들이 테슬라 요건
상장을 기피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 테슬라 요건을 활용해 상장을 추진한 기업은 카페24가 유일하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최근 3년 동안 이익을 실현하지 못한 기업이 특례상장을 한 후에도 풋백 옵션을 부담하지 않았던 증권사를 우수 주관사로 선정, 새롭게 상장을 주관할 경우 풋백 옵션 부담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기업가치 산정에 역량을 갖추고 책임성 있게 공모가를 산정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다. 코넥스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된 기업이 코스닥으로 이전상장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관투자자 자금 유치에 사활= 코스닥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융위는 3000억 원을 들여 ‘코스닥 스케일업(Scale-up) 펀드’를 조성, 저평가된 코스닥 기업 살리기에 나선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한국성장금융이 약 1500억 원을 출자하고 나머지는 민간자금으로 매칭한다.
또한 국민연금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코스닥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코스닥 차익거래 시 현재 0.3% 수준의 증권거래세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작년 4월 차익거래 세금이 면제된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코스닥시장 거래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1997년 도입됐으나 과도한 규제로 유명무실했던 벤처기업투자신탁(코스닥 벤처펀드)도 활성화한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당초 벤처기업 신주에 50%가량을 투자해야 했다. 앞으로는 벤처기업 신주에 15%만 투자하고 나머지 35%는 7년 내 코스닥 상장기업의 신주 또는 구주에 투자하면 된다. 특히 코스닥 투자비중이 50%를 넘어서는 코스닥 벤처펀드에는 코스닥 전체 공모주 물량의 30%가 우선 배정되는 특권도 마련된다. 일반 기관에 부여되던 50% 물량이 코스닥 벤처펀드(30%)와 기관(20%)으로 쪼개졌다.
연기금이 투자 시 벤치마크(BM)지수로 쓸 수 있는 코스피ㆍ코스닥 통합주가지수도 개발한다. 이를 위해 거래소는 ‘코리아300지수’(가칭)를 오는 2월 5일 출시한다. 현재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은 전체 2% 남짓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금융위는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 상품이 출시될 수 있도록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들을 격려할 방침이다. 증권업계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코스닥 부흥 기조에 발맞춰 통합주가지수 개발 소식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거래소는 미국 러셀3000지수를 참고해 중소형 주식의 성장성에 투자할 수 있는 코스피・코스닥 중소형주 전용 지수도 6월께 선보일 계획이다. 기존에 코스피200중소형주지수만 존재했던 터라, 업계 수요가 높아지면서 추가 지수 개발로 연결됐다는 설명이다.
◇회계 장난치면 ‘일벌백계’ = 회계처리기준 위반 관련 사전예방 조치에도 나선다. 기존에는 회계부정 사후 적발 위주로 감시했지만, 앞으로는 회계정보 오류의 신속한 정정을 유도한다. 감리에 계좌추적권도 도입해 감사인 품질관리감리를 강화한다. 국세청과 협업해 외부감사의견 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기업 회계성실도를 세무조사 대상 선정과정에도 적극 활용한다.
상장사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장사 회계 책임도 강화한다. 감사인 지정기업은 지난 2016년 말 기준 177개에 불과했으나, 앞으로는 모든 상장사로 확대ㆍ적용된다. 2016년 당시 기준으로는 2800개사가 이에 해당했다. 다만, 일부 대규모 비상장사의 경우 6년 자유선임 후 3년간 지정으로 바뀌게 된다.
감사인의 감사 책임도 강화해 손해배상시효를 종전 3년에서 8년으로 대폭 늘린다. 또 감사품질도 자율규제 사항에서 법에 의거해 준수할 의무를 지니도록 바꾼다. 낮은 감사보수로 인해 충분한 감사시간 투입이 곤란했던 부분도, 표준감사시간의 법적 근거를 신설해 보완한다.
◇코스닥 독립성ㆍ투명성도 높인다 = 투자를 하고 싶어도 관련 정보를 찾기 힘들었던 비상장ㆍ코넥스ㆍ코스닥 기업 투자정보 문제 해결에도 팔을 걷었다. 증권유관기관 공동으로 기업정보 활성화 사업을 실시하기로 한 것. 앞으로는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이 기술 상장기업 관련 분석보고서를 제공한다. 나머지 유통업 등 다른 업종 상장사에 대해선 지금처럼 중기특화증권사가 분석보고서를 발간한다.
코스닥위원회 독립성도 강화한다. 현재 코스닥본부장이 겸임하고 있는 코스닥위원회 위원장을 외부전문가로 분리 선출한다는 게 골자다. 코스닥본부장에 위임했던 상장심사 및 상장폐지 업무를 코스닥위원회가 심의・의결토록 권한을 준다.
이 외에도 금융위는 사모중개 전문증권사 제도를 신설한다. 사모중개 전문증권사 진입 규제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자본금 요건을 30억 원에서 15억 원 이하로 대폭 낮춘다. 사모투자펀드(PEF)가 창업․벤처기업의 인수ㆍ합병(M&A)과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규제도 꾸준히 개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