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의약품’은 적용 대상이 드물고 적절한 대체 의약품이 없어 긴급한 도입이 필요한 의약품을 일컫는다. 각국 규제기관들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인정받게 되면 다른 신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 및 허가 절차가 간편해지고 독점권과 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 등 혜택이 크다. 이 때문에 많은 국내외 제약사들이 희귀의약품 치료제 시장을 매력적인 ‘블루오션’으로 눈여겨보고 있다.
특히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선 희귀의약품 지정 제도는 희귀 난치성 질병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치료제 개발 및 허가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풍부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4000여 개의 약물이 미국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 유럽연합의 경우 1824개, 일본은 387개의 약물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다.
24일 메리츠종금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이밸류에이트 파마가 전 세계 500대 제약바이오 전망을 집계한 결과 전 세계 희귀의약품 매출액은 2022년에는 2090억 달러(약 223조 원) 규모까지 급성장해 당해 연도 전체 처방 의약품 매출액의 21.4%를 차지할 전망이다. 현재 희귀의약품 분야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은 11.1%로, 희귀의약품이 아닌 약물의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5.3%)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항암신약 ‘오락솔’은 최근 미국 FDA로부터 악성 혈관암인 혈관육종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오락솔은 주사제를 경구용으로 바꾸는 한미약품의 플랫폼 기술 ‘오라스커버리(ORASCOVERY)’가 적용됐으며 2011년 미국 제약사인 아테넥스에 기술 수출된 항암 신약이다.
같은 시기 영진약품의 미토콘드리아 이상 질환 치료제 ‘KL1333’도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KL1333은 지난해 스웨덴 제약사 뉴로바이브에 기술이전한 신약후보물질이다.
메지온의 발기부전 치료제 우데나필 임상 3건은 올해 3분기 중으로 임상 종료를 앞두고 있다. 희귀의약품으로 등록됐기 때문에 허가 신청 시 우선심사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2019년 상반기부터 신약 허가를 신청한 후 곧이어 제품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희귀의약품 개발에 도전해 해외에서 먼저 성과를 인정받는 국내 제약사들이 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법규가 개정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9일 희귀·난치 질환치료제의 신속한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희귀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현재까진 의약품 제조업·위탁제조판매업·수입자만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아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 비해 개정이 이뤄지면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기만 해도 개발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희귀의약품은 글로벌 제약사에 미래성장동력 = 해외에서는 대형사들이 희귀의약품에 주목하면서 올해 들어 M&A(인수·합병) 빅딜이 줄을 잇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는 혈우병 및 희귀 혈액질환 관련 신약 후보물질을 다수 보유한 미국 바이오베라티브를 시총 대비 64% 높은 가격인 115억 달러(12조3000억 원)에 인수했다.
셀진은 미국 주노사를 시총 대비 29% 높은 90억 달러(9조6000억 원)에 인수했으며, 노바티스는 희귀질환인 척수성근위축증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미국 아베시스를 시총 대비 72% 높은 수준인 87억 달러(9조30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태영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다수 글로벌 제약사들이 현재 주력 제품군 특허 만료에 따라 매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신약 개발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희귀의약품 M&A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라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미래 성장동력을 가져다 줄 전략적 파트너 중 하나로 희귀의약품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희귀의약품 시장의 매력을 주목한 제약사들이 늘어나면서 개발에 뛰어드는 국내외 제약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그동안 해외 선진국에 비해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았지만, 관련 규제를 정비하는 대로 글로벌 개발 경쟁에도 적극 합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