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철강 관세를 두고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25%라는 고율 관세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오랫동안 지지해온 WTO 자유무역 체제를 제 손으로 훼손한다는 것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WTO는 재앙”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고 4월에는 “WTO가 미국에 공정하지 않다”고 발언해 미국의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WTO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반대하며 상소기구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무역분쟁 최종심을 담당하는 WTO 상소기구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164개 회원국의 동의를 얻어야 선임될 수 있지만 현재 미국이 문제를 제기해 3명이 공석으로 남아있다. 이는 반덤핑 관세 심사를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하려는 꼼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WTO가 살아날 길은 아직 남아있다. WTO 개혁의 필요성에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그동안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중국의 불공정무역에 불만이 많았다.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며 시장을 왜곡하고 철강 등 원자재의 과잉공급을 불러왔다.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도 까다로워 시장 진출이 쉽지 않다. 그래서 EU와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 대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WTO 개혁에 대해 논의해왔다. 미국의 무역정책을 결정하는 USTR는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으며 라이트하이저 대표도 WTO 개혁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이 WTO 개혁에 동의할 명분도 충분하다. 경제성장은 중국의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는 기반이다.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해 얻은 이익은 낮은 관세가 아니라 안정적인 무역관계 구축이었던 만큼 중국도 세계 무역질서를 따르는 편이 이득이다. 중국은 최근 EU와 WTO 개혁에 협력하기로 합의하며 세계 무역질서와 발 맞추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모든 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중국이 무역 장벽을 낮출 수 밖에 없도록 공동무역망을 형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충고했다. 미국이 중심이 돼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는 자유무역주의 무역망을 형성하면 중국도 참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이코노미스트는 WTO가 불공정거래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에 적합한 기구라며 제한없는 무역전쟁으로 치닫는 경제보다 필요할 경우 적절한 보복을 택할 수 있는 무역질서가 더 바람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