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메디치와 게티를 위한 변명

입력 2018-08-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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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은 어느 삶의 현장보다 돈의 위세가 드센 곳이다. 그런 미술시장을 빗대어 “서화 골동이 권력에 미소 짓고 돈에 꼬리 친다”는 세간의 말이 조금은 거친 듯하지만 그 독설이 왠지 싫지가 않다. 미술과 자본처럼 가치관과 지향점이 다른 영역이 있을까마는 세속적인 손익에는 가차 없는 자본이 겉으로는 고상한 척 미술로 치장하고 우아한 미소를 짓는 것이나, 그런 자본을 천박하다며 비웃다가도 자본이 내미는 손을 꼬리치며 잡는 미술의 허위의식을 긍정하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미술을 대하는 자본의 내면에 불순한 의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천박함에 찌든 자본일수록 더 그럴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예술과 동떨어진 세속자본이 컬렉션의 장(場)을 통해 미술과 화해하고 문화자본으로 다시 태어나는 변이(變異) 또한 어찌 없을 것인가. 역설같이 들리지만 그런 변종 자본가들이 있어 미술문화가 꽃을 피우고, 그 정신과 창조된 아름다움이 보존 전승되는 것이 아닌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사람들은 메디치를 꼽는다. 14∼15세기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그 경제력으로 미술활동을 후원함으로써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피렌체에서부터 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 업적으로 후세 사람들로부터 문화예술 후원의 대명사로 칭송받아왔다.

그러나 조금 불편해지는 부분도 있다. 당시 교회가 금지한 이자 받는 금융업을 통해 재산을 불려 메디치가의 실질적 창업주가 된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1389∼1464)는 신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저승에서 영혼의 구원을 보장하고 이승에서 부와 권력을 공고하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자 매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미술이었다. 메디치의 미술 후원은 결과적으로 르네상스를 촉발하여 인류사회의 문화 창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그 후원도 따지고 보면 사업감각과 권력본능, 신에 대한 외경이 혼합된 것이었다고 본다면 너무 인색한 평가일까?

자본이 미술을 통해 세상과 화해한 사례는 폴 게티(P. Getty, 1892∼1976)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폴 게티, 일찍이 석유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 반열의 부자가 된 사람. 그러나 그는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고 저임금으로 재고용하는 악질 기업인이었다. 나치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 재벌의 고가구를 헐값에 싹쓸이하기도 했다. 또 그는 여자를 수시로 바꾸는 바람둥이였다. 다섯 번을 결혼하고 모두 2, 3년 안에 이혼했다. 다 돈 때문이었다.

돈에 대한 게티의 끝없는 탐욕은 그의 손자 납치사건에서 정점을 찍는다. 손자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이었던 그가 납치범들이 보내온 손자의 잘려진 귀를 보고서야 협상에 나서 협상금을 대폭 감액하고 그것조차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아들부부에게 적선하듯 빌려주는 대목에서 우리는 몸서리친다.

아무튼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던 그였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을 미술품 수집에 아낌없이 쏟아부었고 또 막대한 자산을 미술관 사업에 쓰라고 유언함으로써 죽어서는 아름답게 이름을 남겼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 미국 5대 미술관의 하나로 꼽히는 게티미술관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생전에는 돈을 좇아 그렇게 지독하게 살았지만, 그처럼 미술에 미친 자본가들이 있어 인류의 문화유산은 모아져 보존되고 우리는 상처받은 영혼을 그곳에 의탁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메디치의 미술 후원이나 게티컬렉션에 담긴 의미에는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다. 그 혼재의 모호함을 넘어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미술을 통해 대상물에 구현된 아름다움에 눈뜨고 인간정신의 순수함을 되찾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자유 또는 구원이라고 정의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신도 그들을 구원할 명분이 없어진다.

메디치와 게티를 추억하다 떠올린, 그들을 위한 나의 소박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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