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 간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세 가지였다. 먼저 주주제안 ‘자격’이다. 최근 미국 기업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애플은 보통주 ‘2000달러’ 이상을 보유한 Mr. J라는 한 개인의 주주제안을 다뤘다. 국내 상장사의 주주제안 요건은 자본금 1000억 원 이하는 1%, 그 이상은 0.5% 이상의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 시가총액 1조 원 규모의 상장사에 주주제안을 하려면, 최소 50억~100억 원의 보통주가 있어야 가능하다. 애플의 경쟁사 삼성전자는 최근 시총 280조 원을 돌파했다. 주주의 권리남용 방지 차원의 규정이지만 과도하다. 주주제안을 한 상장사가 2017년 34개사, 2018년엔 32개사로 매년 2000여 곳의 상장사에 비해 1%대에 그치는 주된 이유다.
주주제안의 ‘주제’는 더욱 파격적이다. 회사에 인권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제안부터 연방정부 로비 비용 공시를 확대해 달라는 내용까지 범주가 다양하다. 그들의 관심은 경영뿐 아니라 이미 사회, 환경 영역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는 주주제안의 약 80%가 경영권과 관련되는 국내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이 중 40%는 이사 선임, 20~30%는 배당 관련 안건이다. 국내는 아직 경영의 기본적인 내용에 국한되는 게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미국 회사들의 ‘대응 방식’이다. 주주가 주주제안의 근거, 타사 사례 등을 서너 단락 정도로 요약 기술하면, 회사는 바로 밑에 관련 현황, 반대 논거, 대안 등을 제시하고 링크들을 걸어 최종적으로 표결에서 반대를 요청했다. 주주는 동일 안건이 전년에 이미 26.54%의 찬성을 받았던 건이라며 회사의 주주제안 수락을 촉구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따라 ‘서면 위에 펼쳐진 토론장’이다. TV토론에서 발언 시간을 정하듯 내용이 500자 내로 제한된다.
반면, 국내는 대부분의 주주제안은 제목만 있을 뿐, 주주제안의 세부 내용을 공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상법 시행령상 주주제안 안건이 10% 미만의 지지로 부결되면 3년 내에 다시 제안할 수도 없다. 다소 길어 보이는 기간 이외에도 안건의 부결 여부만 공시될 뿐 안건이 얼마나 많은 찬성표를 득표했는지 주주가 알 길이 없다.
국내 주주제안의 현실을 좀 더 살펴보자. 대부분의 회사는 주주제안을 이사회 안건 다음에 2호 안건으로 배치한다. 1호 안건 승인 시 2호 안건은 자동 폐기된다. 주주제안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도 매년 3건 이상은 발생한다.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주주가 정관의 ‘1인 이상의 감사’를 둘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감사 1인의 추가 선임을 제안했는데, 회사에서 ‘감사 1인’이나 ‘감사위원회 설치’로 정관 개정 안건을 올리는 경우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6주 전, 회사의 주총 공고는 2주 전까지 가능하다. 기본 검토조차 안 된 제안도 있다. 주식 액면 분할을 제안하면서 정작 근거가 되는 액면가와 주식 수가 기재된 정관 변경 안건은 안 올린 경우다. 주주의 과오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주주제안을 멋지게 활용하는 기관들이 나오고 있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가령 A기업은 이익은 대폭 늘었지만 주가는 계속 떨어지고 배당은 그대로인 투자사에 배당금 인상 주주제안을 해 보다 높은 배당을 하도록 타협했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일환으로 회사의 불합리해 보이는 정책에 대해 주주권익을 당당히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주주와 회사는 결코 적대적 대립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합리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동반성장은 ‘주주제안’과 같은 건설적인 소통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