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는 경제] 옛길로는 새집에 갈 수 없다

입력 2018-08-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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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훈 시인, BCT 감사

작은 의약소재 기업의 사장이 연구원 두 사람에게 신제품 개발을 지시했다.

이 회사의 신제품 개발은 화학방정식 개발이다. 결과적으로 한 연구원은 5개의 방정식을 개발하였고 다른 연구원은 30개를 넘겼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 내, 두 연구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그것은 화학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창의성의 차이라고 회사 사장은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일 많이 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현대사회는 일 많이 하는 사람보다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이유다. 연구실이 아닌 사무실에서도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 근면, 성실의 가치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창의력이 절실한 때다.

창의력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능력'이라는 국어사전의 설명은 옳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 않는가. 창의력은 하늘 아래 이미 만들어진 사물에 대하여 새롭게 보는 것, 지금까지 익숙하던 것을 다른 맥락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다. 어려운 말이다. 필자는 '다생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생력'이란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남과 다르게,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다르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까.

관성(慣性)의 법칙 때문이다. 관성이란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같은 방향으로 운동하려는 속성을 말한다. 생각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한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다 보면 그 방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집중하고 집착하다 보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를 over thinking이라 한다.

일 중독자는 자신이 일주일에 70시간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 잘하는 사람은 40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일 중독자가 훨씬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70시간 일하는 일 중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을 넘지 않는다. 나머지 40시간은 그 일에 대한 걱정으로 보낸다. 생각의 관성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답은 다른 방향에 있는데 기존의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생각, 동작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정좌석제가 아닌데도 강의실에서 학생들은 대체로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는다. 집에 가는 길이 여럿 있지만 매일 같은 길, 같은 방법으로 다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ancy) 때문이다.

동전 테두리의 빗금도 경로의존성의 대표적 사례다. 금과 은을 화폐로 쓰던 금은본위제 시절 사람들은 금화나 은화 테두리를 미세하게 깎아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동전 옆면에 빗금을 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가 옆면에 빗금을 쳐서 동전을 발행한다. 과거의 경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경로의존성이란 일종의 관성이다. 개인적 타성이고 사회적 관성이다. 한번 형성되면 그 후 환경이나 조건이 바뀌었음에도 기존의 틀을 유지한다. 과거의 선택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법률이나 제도, 관습이나 문화에까지 이른다. 이 경로의존성이 창의력을 막는다. 익숙한 것은 행하기 쉽다. 과거의 성공법칙을 고수하는 것은 편하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없다.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방식으로 풀 수 있을까.

새로운 경제 화두가 등장했다. 새로운 정책에 적응하는 것은 불편하고 어렵다. 불편하더라도 생각의 관성,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어렵더라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집이 이사를 했다. 옛집에 다니던 길로 새집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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