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연인을 왜 오빠라 부르나요?

입력 2018-10-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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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아줌마의 반대말은? 아가씨 아니면 아저씨란 답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하나 더 있단다. 사모님. 거리에선 아줌마인데 백화점에 가면 사모님이 된다는데…. 갑자기 썰렁한 유머가 떠오른 이유는 요즘 호칭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와 도련님은 성차별적 호칭이요, 친가와 외가도 굳이 가깝고(親) 먼 바깥(外)을 구분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식인데, 정작 내 입장에서 가장 불편한 호칭은 ‘오빠’이다.

오래전 일이다.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시청자 사연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오빠 생일인데요. 오빠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요…” 순간 ‘요즘 여동생들은 오빠 생일날 방송사에 음악까지 신청하는구나, 그 정성이 대단하네’ 싶었다. 그런데 웬걸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니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가사가 아니던가. 연인 사이에 오빠라는 호칭이 서서히 자리 잡아 가던 시기의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하기야 5남매 중 가운데인 나는 언니 오빠 여동생 남동생을 골고루 두는 행운을 누렸지만, 요즘처럼 형제가 하나둘밖에 없는 시대엔 “진짜 오빠”를 경험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러니 나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남자를 오빠라 부르는 것이 대수냐 싶기도 하겠지만, 오빠라는 호칭이 애인의 또 다른 이름이란 사실은 한번쯤 짚어볼 만하다.

대학가에서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70년대 중후반, 남녀 관계의 민주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남자 선배나 자신의 애인을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연인 사이에 ‘형’은 불편하다, 어색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등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평등하고 민주적인 남녀 관계를 갈망했던 순수한 의지만큼은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여성들은 ‘결혼 퇴직’이나 ‘출산 퇴직’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원시적인 관행과 싸워야 했고, 여성도 조직 구성원이 되면 승진 대상자라는 사실을 윗사람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최초의 여성’이 되어 그동안 별 이유 없이 여성금지 구역이었던 길을 헤쳐 나가던 선배 여성들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이 애인을 ‘오빠’라 부르는 후배 여성들을 보며 허탈감 내지 당혹감을 느꼈을 법하다.

정부중앙청사가 광화문에 있던 시절,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입 여성 공무원에게 선배 남성 공무원이 “걱정 마, 이 사무관 오빠가 알아서 해줄게” 하는 말을 직접 들었을 때, “회사에서 상사들이 대리 오빠라고 불러 달래요” 하는 제자들의 푸념을 적잖이 들었을 때, 남성들이 오빠라는 호칭에 연연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다.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성과 ‘오빠’인 남성 사이에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의구심이 밀려오기도 하고. 오빠 입장에서야 여동생 같은 애인이라면 친밀함의 의미가 클 테지만 만만함에 우월함이 담겨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오빠’ 호칭은 1993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주인공 여성(고현정 분)의 대사로 등장한 이후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데 안타까운 것은 오빠를 대신할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때 ‘자기’라는 호칭이 유행한 적도 있었고 영어로 ‘YOU’ 혹은 ‘허니’라 부르는 커플도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긴 매한가지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거나 이름 뒤에 씨 혹은 선배라고 붙이면 어떨까 제안하니 대체로 딱딱해서 싫다,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복잡하고 분주한 세상에 머리 터지게 생각할 일이 많건만 그깟 ‘오빠’란 호칭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대책 없이 한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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