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소주에 타면 양주로 변신" 깔라만시의 조상님…‘타’를 아십니까?

입력 2018-11-19 11:23 수정 2019-0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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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에 실렸던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첨가음료 '타'의 광고.
▲1975년 12월에 실렸던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첨가음료 '타'의 광고.

1975년 말에 게재된 한 신문 광고.

‘타’.

소주에 ‘타’ 먹으라고 해서 이름이 ‘타’다. 2018년 한국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작명법이지만, 옛날엔 흔했다. 차 타고 세계 여기저기 누비라고 ‘누비라’, 섬유유연제로 옷을 보드랍게 해주라고 ‘보드란’하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에도 편의점에 가면 소주에 깔라만시 맛이 나게 만들어 주는 첨가음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타 먹는 깔라만시의 조상 격이 되는 음료가 바로 ‘타’다.

▲'양주 맛! 칵테일 맛!' 무슨 양주인지, 칵테일인지는 중요치 않다.
▲'양주 맛! 칵테일 맛!' 무슨 양주인지, 칵테일인지는 중요치 않다.

◇“요것이 양놈들 먹는 술맛이여?” 모든 것이 귀하고, 가난했던 그 시절

대한민국이 미국, EU, 캐나다, 콜롬비아, 호주, 터키 등과 FTA를 맺고 교역하는 2018년이다. 옛날에는 상류층 만찬자리에서나 즐기는 줄 알았던 와인은 이제 편의점에서 5000원 주고 사와서 집에서 김치를 안주 삼아 마실 수도 있다.

진, 럼, 보드카, 위스키 등 서양 주류도 마음만 먹으면 집 근처 마트에서 채 1만 원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을 만큼 유통산업은 발전했다. 물론 비싼 서양 술은 한도 끝도 없이 비싸지만, 1970년대 웬만한 서민들은 종류와 품질에 무관하게 애당초 서양 술을 접하기 어려웠다.

1974년의 한 신문기사를 보면 맥주 가격은 1병에 220원인데, 사치품 관세인상으로 ‘살롱’에서 판매하는 스카치위스키는 한 병에 2만 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경제기획원 통계를 인용, 1974년 3분기 기준 도시근로자 월평균 수입이 5만4300원이란다. 종합해보면 일반적인 도시근로자가 이때 위스키 한 병을 마시기 위해선 월급의 절반가량을 써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타’는 '타'면 ‘양주 맛! 칵테일 맛!’이 난다고 어필한다. 위스키, 브랜디, 데킬라, 보드카, 럼, 진 등 수많은 종류의 양주 중 어떤 양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섹스온더비치, 깔루아밀크, 미도리샤워 등 무수한 종류의 칵테일 중 어떤 칵테일인지도 역시 중요치 않다(칵테일은 베이스가 되는 술에 맛과 향이 나는 액체를 넣으면 그게 칵테일이다. 애초에 ‘칵테일 맛’이란 건 정의할 수가 없는 단어다).

코쟁이들이 먹는다는 양주, 칵테일! 그 맛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주에 이 음료만 섞으면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상품! 이것이 바로 ‘타’의 세일즈 포인트다.

▲'안보역군', '방첩주부', '읍니다'… 7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글귀들.
▲'안보역군', '방첩주부', '읍니다'… 7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글귀들.

◇아빠는 ‘안보역군’, 엄마는 ‘방첩주부’ 무슨 말이야?

광고 오른쪽 위를 자세히 보면 ‘아빠는 안보역군, 엄마는 방첩주부’라고 적혀있다. 이 광고에만 특별히 쓰인 문구는 아니다. 이 시절의 광고 한 귀퉁이에는 이런 문구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안보역군’, ‘방첩주부’라니. 요즘 애들은 ‘방첩’이 무슨 말인지 한글로 써줘도 모른다.

‘타’를 팔던 1975년엔 이랬다. 이때의 국민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가며 충성해야 했다. “반공(反共)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겠다”라고 선언하며 출범한 정부에서는 누구나 ‘안보역군’, ‘방첩주부’로 암약하며 공산당을 때려잡아야 했다. 문구에서는 가족 구성원 중 아이들이 빠져있긴 하지만, 그게 딱히 사상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자유로운 성장기를 겪게 해 주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이 당시 국가는 아이들 모두가 ‘반공소년 이승복’을 닮길 바랐다.

한 가지 더. 요즘엔 아빠도 주부가 될 수 있고 엄마도 역군이 될 수 있는, 더 정확히는 아빠도 엄마도 모두 역군이자 주부를 겸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이때는 아빠가 주부이거나 엄마가 역군을 하면 큰~일이 났다. 아니, 큰~일이 나는 시대였다고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더라.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1991년에 태어났다.

쓰는 말도 지금이랑은 꽤 달랐다. 지금은 보통 송년회로 바꾸어 많이 쓰는 연말 모임을 이때는 ‘망년회(忘年會)’라고 표현했다. 한 해 동안의 힘든 시름과 괴로움을 술로 털어 ‘잊자’는 뜻이다. 일본에서 유래한 표현이었던 만큼, 요즘엔 한 해를 보내는 것을 기리자는 의미의 ‘송년회(送年會)’라는 말로 대체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이가 기억하고 있듯이, ‘~습니다’라는 종결어미도 이땐 ‘~읍니다’가 맞는 표현이었다. ‘있읍니다’까진 그렇다 쳐도 ‘좋읍니다’는 정말이지 너무 어색하다.

▲1975년 당시 진로에서 선보인 인삼위스키 '에릭사'(위)와 백화양조에서 수입해 판매한 위스키 '죠지드레이크'.
▲1975년 당시 진로에서 선보인 인삼위스키 '에릭사'(위)와 백화양조에서 수입해 판매한 위스키 '죠지드레이크'.

◇불사의 약! 신비한 액체! 위스키!

당시 소비자들이 가졌던 양주에 대한 동경은 다른 여러 광고에서도 드러난다.

상단에 있는 광고는 1970년대에 진로에서 출시한 인삼위스키 ‘에릭사’다. 광고 아래에 고관대작들이 건배하는 모습에서부터 이 광고의 타깃이 대략 짐작 간다.

‘에릭사’. 지금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엘릭서(ELIXIR)’라고 읽어야 하는 이 단어는 원래 연금술에서 ‘불로불사의 영약’을 일컫는 말이다. 이때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정신에 따라 서양의 고급양주를 조선의 영약 인삼으로 만들면 ‘불로불사의 영약’에 비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조금 다른 얘기긴 하지만, 원래 위스키란 ‘곡류’로 만드는 술이고, 인삼은 곡물이 아니다.

지금은 네이버쇼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는 컵까지 세트로 사도 7만2800원인데, 가장 인기 있는 인삼주는 15만 원이다. 현재라면 인삼을 원재료로 위스키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웃기기 이전에 바보 같은 마케팅이라고 손가락질받을지 모른다.

또 하나의 광고는 지금은 롯데칠성음료의 계보로 이어지는 백화양조가 수입한 ‘죠지드레이크’라는 스카치위스키다. ‘드디어 맛 보게 된 정통 스카치위스키’, ‘오크통 속에서 잠들었던 신비한 액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물론 이 광고 오른쪽 아래에도 ‘남침에 설마없고 안보에 내일 없다’라는 철지난 글귀가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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