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 이익(李益)이 지은 ‘밤에 수항성에 올라 피리 소리를 들으며[夜上受降城聞笛]’라는 시를 강의하다가 “어디서 누군가가 부는 갈대 피리 소리[不知何處吹蘆管]”라는 구절에 이르렀을 때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시의 분위기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시조(時調)가 생각나지 않느냐고.
나는 내심 이순신 장군의 그 유명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시조를 염두에 두고 질문을 했건만 학생들은 전혀 답이 없었다.
내가 이 시조를 읊으면서 학생들에게 “정말 이 시조를 모르느냐?”고 되물었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모른다고 했다. 혹 이 시조를 언젠가 한 번이라도 들어본 것 같다는 기억이라도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수강학생 41명 중 겨우 세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 후, 서울의 유명 대학에서 특강을 하게 되어 학생들에게 다시 확인해 봤다. 역시 50여 명 중 네댓 학생만이 들어본 적이라도 있다는 답을 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한마디로 넘기기엔 충격이 너무 컸다. 학생들이 갑자기 어느 낯선 나라의 이방인으로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에도 학생들에게 이 시조를 아느냐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알고 있었고 외우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우리의 국어 교과서가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런 시조도 안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놀이삼아 외웠던 시조들을 헤아려 봤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한 수씩 외우다 보니 금세 20여 수를 넘기면서 우리 시조의 정취에 빠져들었다. 아! 지금의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런 정취를 느끼게 하자고 하면 내가 고리타분한 것일까? 우리의 교육, 왠지 큰 문제가 있어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