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내년 초 세계 최대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R3CEV’ 가입을 추진한다. 국내 핀테크 사업을 지원하고 감독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R3CEV에 감독기구가 가입해 현재 활동하는 은행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감독 회원 자격으로 R3CEV에 가입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관련 기관들과 협의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에서 핀테크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감독 방식은 어떤지를 살피고 국내에 적용 가능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한 시중은행 디지털 담당 임원은 “은행 간 비즈니스를 하는데 감독기구가 들여다본다면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공개된 거래 장부다. 금융회사 중앙 서버에 보관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거래 기록을 모든 참여자가 나눠 보관하기 때문에 사실상 위·변조가 어렵다는 장점이 있어 금융회사에서도 관심이 높다.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R3CEV는 금융 서비스 개발 회사인 R3를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국내 시중은행들이 참여하고 있다. 블록체인 플랫폼(Corda)을 공유하고 회원사 간 기술 개발, 사업 협력 장을 제공한다.
금감원이 R3CEV에 참여하는 이유는 전 세계 다양한 블록체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원사는 블록체인 관련 보고서나 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각 나라의 핀테크 사업 인·허가 법규부터 활성화 정책을 조사하는 데 유리하다.
특히 ‘레그테크(규제+기술)’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레그테크란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 신기술로 금융회사를 실시간 감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감원이 추진하고 있는 ‘머신 리더블 레귤레이션(MRR)’ 시범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MRR는 금융 관련 법을 기계가 인식하는 언어로 바꿔주는 기술이다. 영국에서 시범 사업을 하는 것을 안 금감원이 국내에 도입했다. R3CEV에서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감독 방향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9월 제20차 통합금융감독회의에서 “핀테크에서 레그테크를 거쳐 섭테크(감독+기술)로 이어지는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금융 서비스를 연구하고 은행권 활용 실태도 살펴본다. 정부가 블록체인 등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나 아직 관련 법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제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만큼 사고 발생 시 소비자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핀테크 산업으로 주목받던 P2P(개인 간 거래)업체들의 사기·횡령으로 1000억 원대 피해가 생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블록체인 업계도 “명시적 규제를 도입해 산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걷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컨소시엄에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5곳이 참여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4월과 8월 실효성이 적다고 판단해 탈퇴했으나 최근 R3CEV가 은행에 무료 가입을 제안해 지난달 재가입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말 재연장을 하지 않았으나 최근 재가입을 검토하고 있다.
금감원 가입으로 실효성 논란이 일었던 R3CEV가 활성화될지 관심이 쏠린다. 연회비가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에 달하지만 단순히 정보 공유에만 그친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