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고미술계의 위기, 신뢰의 위기

입력 2019-01-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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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가 많이 어렵다. 생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숨소리가 곳곳에 가득하다. 고미술계의 사정은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불황의 차원을 넘어 자칫 시장 붕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지되고 있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고미술시장의 활력과 에너지는 경제력에서 나온다. 당연히 그 움직임은 경제 변동과 비슷한 추이를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상황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이는 우리 고미술계가 무언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최근 고미술시장의 뚜렷한 양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대로 꾸준히 거래되는 고가품과는 달리 중저가품 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현상이다. 중저가 거래가 활발해야 상인들의 생업 기반이 충실해지고 신규 컬렉터의 진입도 일어나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상황은 거래 부진 정도가 아니라 거래 절벽 상태로 비친다. 이를 향후 우리 고미술시장의 불길한 전조 현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다른 하나는 시장의 중심축이 경매 쪽으로 옮아가고 있는 점이다. 컬렉터들이 경매를 선호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게 상인들조차 경매에서 낙찰받고 경매에 내다팔고 있다. 가게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경매시장이 시장 수요를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에는 경매회사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시장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모두를 망하게 할지 모른다. 승자의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경매 쪽으로의 쏠림 현상은 고미술품의 독특한 거래 관행이나 속성과도 맞물려 있다. 가게 중심의 고미술시장은 여느 시장과 달리 공개적인 거래보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서 조용히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시장 정보의 공유가 잘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마저도 비대칭적으로 보유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위작(僞作)의 유통 가능성이 높아지고 과다한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그러한 불완전경쟁 요소를 줄여 효율을 높이는 거래시스템이 경매(옥션)시장이다. 경매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된 정보로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경쟁하는 구조다. 제대로 작동할 경우 고미술시장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리스크와 비효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아니 현실적으로도 가게시장과 경매시장은 각각의 고유 기능과 장점을 살려 상호 보완적인 경쟁 체제를 형성할 때 더불어 발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역할 분담과 전략이 필요하다.

가게 상인은 컬렉터의 취향에 맞는 맞춤식 밀착 고객관리에 비교우위가 있다. 그 비교우위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초심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훌륭한 컬렉터로 나아가게 하는 안내자 역할도 그들의 몫이다. 고객과는 신뢰를 토대로 공존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긴 안목으로 판단하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매회사는 경매회사대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공개된 경쟁시장의 이점을 살려 시장과 컬렉터들에게 차별 없이 정보를 제공하고, 내부정보 접근 등의 비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문제가 있는 작품의 이력을 세탁하는 데 협력해서도, 위장 입찰로 가격을 조작해서도 안 된다. 대형 화랑이 경매회사를 소유하여 시장을 교란하거나 보유 물건을 처분하는 창구로 활용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이러한 지적사항들도 결국에는 시장의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일각에서는 고미술계 불황을 두고 경기침체와 같은 외부적 요인을 꼽지만, 그런 요인은 반복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있었다. 최근 상황은 분명 구조적이며 내부적인 것이다. 그 중심에 시장과 시장상인들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고미술시장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 신뢰를 허무는 것은 잠깐이지만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위작을 걸러내고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서 신뢰는 쌓이기 시작한다. 확언컨대 가게건 경매건 거래 작품의 진위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시장 불신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가게는 거래 기록을 남기면서 환매를 보장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경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시장을 경쟁으로 이끄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고미술계의 뼈를 깎는 혁신을 기대한다. 혁신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 그러나 지금이 바로 그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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