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정의선의 노조 기피증

입력 2019-02-18 07:30 수정 2019-07-2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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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2013년 스위스 제네바모터쇼 때였습니다. 월드랠리챔피언십(WRC) 재진출을 밝힌 현대차는 i20 랠리카를 공개하며 한창 들떠 있었습니다. ‘글로벌 800만 대(2014년) 시대’를 공언할 때였으니 어느 때보다 자신감도 가득했습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지 모터쇼를 취재하던 출입기자 10여 명과 오찬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운 좋게 맞은편에 앉았던 기자 역시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 부회장은 ‘누구보다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고, 말투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신중했으며, 꽤 예의 바른 사람’으로 점철됩니다.

그렇게 무거운 선입견을 성큼 밀어낼 만큼 격이 없었던 그는 올 들어 직원들과 본격적인 소통 행보에도 나섰습니다. 신임 과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 직접 영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요. 영상 메시지였지만, 이 회사 분위기를 감안해 보면 꽤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물론 공개된 영상은 잘 편집된 결과물이기는 합니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했던, 지난해 쇄신인사와 관련된 그의 속내는 편집해 잘라냈고, 친환경차 넥쏘 시승을 담은 짧은 영상만 공개됐으니까요.

정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전략적 투자와 대대적인 조직개편, 수십 년 회사를 이끌어온 그룹 부회장단을 대상으로 한 쇄신인사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정 부회장에게도 유독 아킬레스건이 있습니다. 여느 재벌가처럼 노무 분야를 기피하는 것인데요. 이른바 ‘노조 기피증’입니다.

지난달 31일 현대차 광주 완성차공장 투자 협약식이 치러진 자리에는 정관계는 물론 재계 인사까지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특별히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혁신적 포용국가로 가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큰 관심을 보인 자리였습니다.

의미 깊은 행사였지만 정작 정의선 부회장은 없었습니다. 회사 노조가 “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었으니까요. 현대차 측은 “노무와 생산 분야 담당 임원이 참석했고, 정 부회장은 전략기획과 신기술 등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로 가름했습니다.

노조의 잘잘못을 떠나 우리 재계 총수 일가는 극도로 이들과 얽히지 않으려 합니다. 노조와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애꿎은 담당 임원만 책임을 맡고, 결과에 따라 신상필벌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정 부회장은 여느 재계 3세 경영인과 뚜렷하게 다른 행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사고에 휘말린 적이 없고 항상 진중했기 때문이지요. 나아가 기아차 사장 시절에는 ‘디자인 기아’를 앞세워 뚜렷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글로벌기업이 된 현대차그룹의 경영 성과는 단순하게 숫자로 대신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일부 분야를 의도적으로 피하기보다 새로운 시각을 앞세워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특히 노무 분야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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