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식물도 사람도 기다림 속에 성숙 한다

입력 2019-04-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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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

본격적으로 새봄을 맞이한 식물원으로 향하는 아침 출근길은 마음부터 부산합니다. 이미 한 달여 넘게 새봄을 준비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 시기에는 모든 농부의 마음이 이러하리라 생각합니다. 보통의 농사에서는 작물의 종류가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 하루 해가 부족합니다. 몇 종류의 식물을 가꾸는 일반 농사가 이러한데, 1000종류가 넘는 식물을 가꾸는 식물원에서는 얼마나 많은 일을 준비해야 할지 쉽게 상상이 가능할 것입니다. 사람도 제각각 취향이 다르듯이 식물들도 저마다 제각각 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취향을 맞춰 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식물들은 새싹이 나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처음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아 매일 지켜보는 사람의 속을 태웁니다. 한편에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서둘러 자라는 아이들 때문에 손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봄의 화려한 꽃들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대를 앞서 달려 나가는 아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답답하게 굼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내리쬐면 아침저녁으로 쌀쌀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겉옷을 벗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온도가 높아집니다. 이즈음이면 식물원으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예쁘게 꽃들이 가득 피어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관람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꽃도 몇 개 못 보았으니 관람료를 돌려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매년 이런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다 보니 이즈음이면 매년 마음이 더욱더 조급해집니다. 이 조급함은 어느새 강박관념으로 변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더 다양한 꽃들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식물들을 고문하기 시작합니다.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실망을 줄 수 없다는 식물원의 서비스 관점도 한몫을 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온실에서 일찍 식물을 키워 꽃이 피기 직전에 밖에 내놓는 일들을 합니다. 담당 직원들에게는 이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햇살 좋아 따뜻한 날에는 밖에 두었다가 저녁에 추워지면 온실로 다시 들이거나 보온 덮개를 씌워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비바람이라도 불면 식물들을 보호하느라 모든 식물원 직원들이 전전긍긍합니다. 어차피 평생 식물을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야 숙명이라 그렇다 치지만, 이런 상황은 식물들에게도 엄청난 고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따뜻한 환경에서 더 이상 추위는 없을 줄 알고, 넉넉한 물과 양분을 공급받으며 편안하게 살다가, 밖에 옮겨지는 순간부터 시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른 봄 날씨가 원래 그러하듯이 냉기와 온기가 아침저녁으로 다르고 화창한 날과 비바람이 부는 날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어떨 때는 늦은 눈까지 내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덕이 심한 봄날 식물원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어떻게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래부터 밖에서 자라고 있던 식물들은 아직 잎도 다 펼치지 못하고 꽃도 피려면 멀어서 초라해 보이지만 튼튼하고 건강합니다. 이렇게 자란 식물들은 꽃도 더 오래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들 눈에 조금 먼저 예쁘게 보이기 위해 온실에서 빠르게 키워 밖으로 옮겨진 식물들은 잎과 꽃을 다 피웠지만, 측은해 보일 정도로 상태가 나빠집니다.

식물들을 이렇게 고문해 힘들게 만들고 결국은 초라한 모습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게 만든 것은 순전히 인간들의 욕심과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꽃만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편협한 욕망이 문제의 근원인 것입니다. 느리고 작지만 튼튼하게 변화무쌍한 봄 날씨를 견디는 새싹들의 모습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기다림의 여유가 우리들에게 생기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온갖 편안한 환경과 풍요로운 물질로 아이들을 키우고, 학교에 보내지만, 마음을 놓지 못해 아이들 생활을 간섭하는 것도 이와 같은 고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욕심과 조급함으로 온실에서 일찍 꽃을 피우려 고문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금 느리다고 다그치곤 했던 제 모습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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