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이 받아든 A+ 성적표

입력 2019-04-11 05:00 수정 2019-07-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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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 금융부 기자

▲금융부 김보름 기자
▲금융부 김보름 기자
인사평가에서 높은 고과를 받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직장 상사한테 잘 보이거나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라인을 잘 탄다고 평가받는 전자가 승진이 빠른 경우가 많다.

은행을 감독·관리할 의무가 있는 정부도 은행에 성적표를 매긴다. 금융위원회는 10일 2018년 은행별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실적을 나열했다. KEB하나은행이 가장 많은 금액인 904억 원을 지원해 A+를 받았다. 금융위는 분기별로 은행별 우수사례를 소개하고 사회적경제기업 대출 활성화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물론 공공성을 띤 은행이 사회적 책무를 해야 하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성적 줄세우기’ 평가 방식이 산업 전반에 무차별하게 적용된다면 은행의 진짜 실력은 ‘빛 좋은 개살구’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실제 은행권에서 기술금융 실적을 높이기 위해 일반 업종을 기술기업으로 둔갑시키는 등 편법 실적 쌓기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혁신·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혁신금융’도 마찬가지다. 5대 금융지주는 5년간 모험자본에 28조 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올해부터 국책은행 평가 시 자동차·조선업종 기업에 대한 대출 등 자금 공급 실적에 개별 평가 항목으로는 최대 배점을 부여한다. 지난해 5월 생산적 금융의 일환으로 장려하기 시작한 동산담보대출 실적도 매달 당국에 보고된다.

은행 평가 기준이 2008년 ‘녹색금융’, 2014년 ‘창조금융’, 2019년 ‘혁신금융’ 등 정권마다 바뀌면 은행들은 5년마다 새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A+ 성적표를 받기 위해 경쟁하지만 이와 달리 국제 경쟁력은 떨어지는 이유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서 국가 종합순위는 15위를 기록했지만 금융경쟁력은 19위에 머물렀다.

최근 금융권 행태에 대해 정부 관료도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뱅킹(Banking)’ 실력을 두고 평가가 이뤄져야 할 때다. 줄을 잘 서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진짜’ 금융업 발전을 위한 평가가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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