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신의칙’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사건을 통해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달면서 등장했다. 이후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사용자 측은 추가 법정 수당, 퇴직금 등을 요구하는 근로자 측에 맞서 신의칙을 내세워 항변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박모 씨가 지방의 한 버스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늘어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판결을 유지하면서도 일비 등을 제외한 계산방식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대전지법 항소부에 돌려보냈다.
1993년 4월부터 버스 운전기사로 일한 박 씨는 2011년 8월 퇴사하면서 4700여만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회사 측은 2011년 6월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승무수당, 근속수당 등을 제외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박 씨는 고정적이고 일률적으로 받은 각종 수당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하며 이에 따라 늘어난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번 재판은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라 늘어난 퇴직금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여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박 씨가 받은 상여금, 일비, 승무수당, 근속수당이 정기적ㆍ일률적으로 지급됐다고 보고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이에 회사 측이 이미 지급한 퇴직금을 제외한 1800여만 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매월 일정 근무일수를 채울 경우 지급하던 상여금의 정기적ㆍ일률적 성격을 인정해 통상임금이 맞다면서도, 이를 기준으로 퇴직금을 추가 지급할 경우 회사의 자본잠식 상태, 부채총액 등을 종합하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일비는 복리후생적 성격이 강한 만큼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후 인정액을 1400여만 원으로 줄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의 추가 퇴직금 청구액은 약 3600만 원 상당에 불과한데 회사의 연 매출액 약 40억 원의 약 0.9%, 자본금 5억 3,000만 원의 약 6.7%에 불과하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청구 금액을 지급한다고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년간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적자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영업손실액 상당의 보조금을 받고 있어 추가 퇴직금 등을 지급한다고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 1부는 한진중공업 근로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청구한 다른 소송에서도 신의칙을 적용해 원고패소 판결한 2심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