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3일(현지시간) 관련 토론회에서 한국으로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징용공 소송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관련해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선 우대 조치는 취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 문제와 통상 문제를 엮은 것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반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도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계획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며 예정대로 4일부터 실시할 계획임을 분명히했다. 한국 정부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철회를 요구했음에도 이에 아랑곳없이 계획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기자회견에서 “특히 무기 등으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을 수출할 때에는 확실한 관리를 항상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는 재검토 노력을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하고,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도체 등 소재 수출 규제에 따라 향후 한국 기업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일본 기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예의주시하겠다”고만 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양국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다”며 지난 1일 한국으로의 수출 관리 규정 운영을 검토하고 스마트폰과 TV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에 첫 배상 판결을 내린 지 8개월여 만에 일본 정부가 보복에 나선 것이다.
적용 대상이 된 3개 품목은 TV와 스마트폰 OLED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수적인 ‘리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이다. 이들 3개 품목은 그동안 한국 수출이 포괄적 허가 대상이었지만 4일부터는 계약별로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허가신청과 심사에 90일 정도의 시간이 걸려 사실상 수출을 차단하게 되는 셈이다. 이들 3개 품목은 일본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9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이 거세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사설 등을 통해 징용공 문제를 둘러싼 보복 조치를 자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노무라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일본 기업은 70~90%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한다. 수출 규제가 강화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정부가 해당 소재의 전면 금수 조치를 실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한국은 세계 반도체 메모리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큰 혼란이 생기면 곧바로 일본 기업들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