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의 시사인문학] IDEAL 리더십, 이상적 지도력

입력 2019-07-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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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칼럼니스트

우선 영어 단어 맞히기 단답형 퀴즈부터 하나 풀어보자. ship(배) 중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ship, 가장 큰 ship은 무엇일까? 정답은 leadership(리더십)이다. 그 이유는, 인구 수억 명의 국가나 지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의 국민과 역사도 이리저리 끌고 가는 게 바로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정치·경영·군사…생명과학 용어로도

리더십 개념은 참으로 널리 사용된다.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 군사학 같은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생명과학에서조차 정식 용어로 쓰인다. ‘생명과학대사전’에는 리더십을 “집단에서 목표나 내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집단 활동에 참여하여 달성하도록 이끄는 능력”으로서, “동물 집단에서 1개체 또는 몇 개체가 집단을 이끄는 개체”라고 정의해 놓았다. 인간 이외의 동물의 경우에도 “우두머리에 의해 집단에 질서가 잡히고 통제가 이뤄지는 모습이 분명히 관찰”되면 리더십의 작용이라는 ‘자연과학적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리더십은 팔로어(follower, 따르는 사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따르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리더십은 성립한다. 어느 국어사전에는 리더십을 ‘무리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어로는 지도력(지도성)이나 통솔력이라고 써야 한다고 경고(?)해 놨지만 이제 리더십은 여느 우리말과 다름없는 한국어로 당당히 자리 잡은 듯하다.

통찰력·의사결정·융통성 등 핵심

이제 이상적(ideal) 리더십의 핵심사항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리더십의 요체는 대체로 다음 다섯 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리더십의 가장 핵심적 요소로 통찰력(Insight)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통찰력은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영민한 분별력을 전제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이나 인간이 부딪히는 무수한 문제에는 예외 없이 지엽적 측면이 있고 근본적 측면이 있다. 일시적인 특성을 지닌 게 있는가 하면, 보다 지속적인 특성을 지닌 게 있다. 단지 특정 부분과 관련된 사안이 있는가 하면, 분명히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 있다. 이처럼 대비, 열거해 볼 수 있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여 그 실상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파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주어진 문제를 조망(조감)적 시각으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갖추기 어렵고 그런 만큼 귀중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로 꼽아야 할 리더십의 핵심요소는 훌륭한 의사결정(Decision-making) 능력이다. 리더십 발휘는 곧 다양한 사안과 관련된 의사결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최선의 해법을 적절한 기회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함은 물론이다. 조잡한 미봉책이나 아마추어적 접근을 배제하고 항상 냉철함(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필요하지만, 까딱하면 우유부단에 빠지거나 시의성(時宜性,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의 리더십 핵심 요소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이다. 이 용어는 ‘주다’를 뜻하는 ‘em’과 권력을 뜻하는 ‘power’가 결합된 것으로서, 흔히 ‘권한 부여’라고 해석한다. 리더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책임과 권한, 자원에 대한 통제력 등을 부하에게 배분하거나 공유하는 과정을 말한다. 오늘 우리 사회처럼 모든 일이 고도로 세분화, 전문화된 환경에서 아무리 걸출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만물박사가 되거나 전능에 가까운 능력은 지닐 수 없다. 지도자가 지금 시대의 이런 사회(구조)적 특성을 모르고 이른바 ‘만기친람(萬機親覽)’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무수한 일에 치여 피곤하기만 할 뿐,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지도자는 임파워먼트와 관련해서, 아니 리더십의 효율성이나 성과의 극대화, 그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명심보감(明心寶鑑)’의 다음 한 구절을 명심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마라.”[疑人莫用 用人勿疑]

제대로 된 리더십의 네 번째 요소로 융통성(Adaptability) 또는 유연성을 꼽고 싶다. 융통성은, 사전적 풀이 그대로,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문제에 부닥치면, 리더십이 시원치 않을수록 도그마나 특정 이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문제를 도식적으로 파악하고 부적절하게 대처한다.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실상이 피상적으로 볼 때와 판이한 문제들인데도 모두 ‘그게 그거’라고 안이하게 판단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연한 사고방식 또는 융통성 있는 자세의 부족에서 비롯된 대책, 즉 편협한 시야에서 나온 경직된 대응이 ‘헛발질’에 그치기 쉬움은 너무나 당연하다.

리더십의 마지막, 다섯 번째의 핵심요소로 학습능력(Learning ability)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리더십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인간은 한평생 배우는 존재이고 또 배워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리더십과 관련하여 배우려는 노력, 배우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지도자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뒤따르는 사람들, 즉 팔로어들의 삶의 방향을 직간접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지도자일수록 자신의 직접 경험에서는 물론이고 타인의 시행착오나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다양한 사례에서도 온갖 긍정적, 부정적 교훈을 찾아내어 적극 활용한다. 이런 리더십이 효율성이 높고 성과가 다대(多大)할 것임은 물론이다.

집단의 성격·팔로어 규모 따라 편차

결국 이상적(ideal) 리더십은, ‘예리한 통찰력(Insight), 훌륭한 의사결정 능력(Decision-making), 실질적 임파워먼트(Empowerment) 능력, 융통성(Adaptability), 습관화된 학습능력(Learning ability)’이라는 5개 요소, IDEAL(각 요소의 영문 머리글자를 모으면 IDEAL이 됨)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에서든 과거 역사에서든 간에, 이런 ‘IDEAL’을 완벽하게 갖춘 지도자를 찾기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완벽하다고 만인에게 인정받는 지도자라도 엄격하게 평가해보면 낮은 점수를 받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5개의 측면(척도)은 리더십을 저울질하는 한 기준으로서도 꽤 적절해 보인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다양한 맥락에서 논의되지만, 보다 세부적으로 요구되는 리더십은 그 집단의 성격이나 팔로어의 규모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일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 총장의 리더십은 군대 사단장의 리더십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비슷한 논리로, 설령 개념상으로는 똑같은 ‘행정 리더십’이라고 보더라도, 면장의 리더십과 대통령의 리더십은 천지 차이가 있다.

당면한 문제의 해법, 리더십이 판가름

최근 며칠의 언론 보도는 한일 갈등, 미중 무역전쟁, 북한 비핵화 관련 실무협상, 노조의 파업, 정부 몇몇 부처의 장관 교체 문제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성격은 매우 다르지만 상당 부분 리더십을 공통분모로 삼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열거된 문제들 대부분의 해법은 결국 관련 사항을 다루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해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다.

리더십을 갖춘 각계 지도자들이 잘 발굴되고 그들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우리 사회가 모든 면에서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인류 역사, 아니 우리나라 근현대사만 봐도 리더십, 특히 정치 리더십이 나라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던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걱정에 대해 지금 우리 상황은 그런 시절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당장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안과 걱정이 앞서는 심정임을 숨길 수 없다. 올더스 헉슬리의 “인간이 역사의 교훈에서 깨닫는 바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가 가르쳐야 할 모든 교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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