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흔히 ‘상아탑’에 빗댄다. 상아탑이란 말 그대로 코끼리의 윗어금니가 쌓여있는 것을 가리킨다. 새하야면서도 단단한 상아탑은 속세를 떠나 진득이 학문에 매진하는 곳으로서의 대학의 이미지와 잘 맞물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쌓인 상아들에서 ‘돈’을 봤다. 야금야금, 또는 왕창 상아를 빼다 팔았다. 몇몇 상아탑은 휘청였고, 또 다른 상아탑들은 아예 무너지기도 했다. 이른바 ‘사학비리’다. 명지대학교를 운영하는 명지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전 이사장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학원의 자금을 유용하면서 파산 위기까지 이르렀다.
◇ 계열사 명지건설로 돈 2400억 빼가…‘사학비리’로 7년 실형 = 11억 원 vs. 2012억 원. 앞은 유동자산, 뒤는 유동부채다. 1년 내 갚아야 하는 빚이 같은 기간 동안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200배 가까이 많은 상황. 명지대학교와 명지전문대 등을 운영하는 명지학원의 1분기 재무제표다.
매년 누적되는 손실도 심각한 상황이다. 같은 시점 명지학원의 결손금은 2884억 원이다. 결손금이란 당기손실액이 누적된 값이다. 손실이 쌓이고 쌓여 자본이 동난 지는 이미 오래. 명지학원의 자본총계는 -446억 원이다.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이런 중에 지난해 12월 한 채권자가 서울회생법원에 이 명지학원에 대해 파산신청을 했다. 자발적으로 돈을 돌려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조 원대 수익사업체를 보유했던 명지학원은 이렇게 파산의 기로에 섰다.
명지학원의 ‘수난사’ 한가운데에는 유영구 전 이사장이 있다.
발단은 1997년. 유 전 이사장은 명지병원을 설립했다. 공사는 유 전 이사장이 당시 회장으로 있던 명지건설이 맡았다. 하지만 외환위기(IMF)가 터졌다. 명지병원의 수익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명지건설의 상황도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 전 이사장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 중에 명지건설의 유동성은 점차 악화했다. 2007년 유 전 이사장은 기어코 ‘알짜배기’였던 명지학원까지 손을 댄다. 명지건설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약 2400억 원의 명지학원의 돈을 끌어다 쓴 것이다.
몇 년 뒤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 전 이사장을 기소했다. 명지학원 자금 727억여 원을 횡령하고, 명지건설의 부도를 막기 위해 1735억여 원을 부당 지원해 재단에 피해를 준 혐의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정영훈)는 유 전 이사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명지건설의 회생과 1500억 원대의 개인 연대보증을 피하기 위해 명지학원 존립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줬다”며 “피해액수는 2400억여 원의 천문학적인 수치로 범행이 15년간 조직적·계획적으로 이뤄져 중한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앞서 검찰이 구형했던 5년에 2년을 얹은 것이다.
법정 공방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2012년 7월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유 전 이사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4억3000만 원 못 받아” 파산신청…법원 조정권고로 위기 모면 = 비리 당사자는 처벌됐지만, 초토화된 학원의 재무상태는 그대로 남았다.
지난해 말 명지학원에 대한 파산을 신청한 채권자가 돌려받지 못한 돈은 4억3000만 원.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2004년 명지학원이 명지 엘펜하임을 분양하면서 “9홀짜리 골프장을 지어서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광고한 것이 발단이었다. 골프장 건설이 무산되자, 분양 피해자들은 명지학원에 소송을 건다. 2013년 법원은 피해자 33명의 손을 들어주고, 명지학원에 192억 원의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명지학원 측은 배상을 계속 미뤘다. 교육부 허가 없이는 경매 압류 등이 불가능하도록 한 ‘사립학교법’과 엘펜하임 시세 하락 등이 근거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채권자가 또다시 법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지학원은 파산의 위기에서 한시름 놓은 상황이다. 서울회생법원(부장판사 전대규)이 ‘조정 권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원은 명지학원에 사기분양 혐의로 김 씨에게 갚아야 할 배상금 빚 4억3000만 원을 8월 말까지 갚으라고 권고했다. 명지학원은 자산을 팔며 유동성을 마련하고 있다. 조만간 명지학원이 내놓은 서대문구 홍제동 소재 효신빌딩에 대한 1차 입찰이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된다. 연면적 4778㎡으로 감정가는 토지와 건물을 합해 총 189억3598만 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명지학원이 이 권고안 이행을 마무리하면 법원은 파산 기각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 파산은 면할 듯하지만...불똥은 ‘총장 사퇴’ 움직임으로 =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6월 21일 명지대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일련의 사태로 대학 안팎의 여론이 악화하는 가운데 유병진 총장이 쓴 것이었다. 그는 “(파산 신청이) 대학의 존폐 문제까지 거론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학생 여러분께 불안과 걱정을 안긴 점에 대해 총장으로서 깊은 책임을 느끼며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 여러분께 불필요한 우려를 씻고 명지의 더 밝은 내일을 위해 학업과 자기계발에 집중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여론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유 총장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유 총장은 유 전 이사장의 친동생이다. 명지대 부총장과 관동대 총장으로 재작하다 2008년부터 총장을 맡고 있다.
명지대 학생들로 이뤄진 명지등불 공동행동은 5월 집회에서 “유영구 전 이사장 시절부터 이어져 온 방만 경연으로 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며 “유 전 이사장이 징역 선고를 받은 뒤 총장으로 친동생인 유병진 총장이 취임하며 재정상황은 더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명지대 3학년 이모(24·여) 씨는 “밝은 내일을 위한 약속이고 뭐고 사퇴해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총장 사퇴야말로 학교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졸업을 앞둔 김모(26) 씨도 “파산 전에 지급할 능력이 있는데도 학생들 등록금을 빼돌린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명지대 인문대 총학생회는 ‘총장 이사회 사퇴 요구’와 ‘총장직선제 도입 요구’를 안건으로 학생 총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각각 찬성률은 96.45%, 93.94%에 달했다. 총학은 이 결과를 이사회에 전달했다. 6월 25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 두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명지등불 공동행동 관계자는 “명지학원은 이사회에서 안건을 모두 부결하면서 민주적 절차에 따른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했다”며 “이는 자결권에 대한 도전이자, 학교의 주인인 학생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사학비리 절반 이상이 ‘돈 문제’#A 대학 총장은 교비로 골드바 30개를 구입했다. 전·현직 이사 3명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나머지 27개는 골드바 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했다. 해당 내용은 회계 결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B 대학 총장은 교비로 6643만 원어치 00컨트리클럽 회원권(골프 회원권)을 샀다. 총장은 6년간 이 회원권을 혼자 사용하며 골프를 쳤다.
최근 적발된 사학비리의 절반 이상은 ‘돈’과 연루된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부와 사회혁신위원회이 지난달 발표한 ‘사학혁신위원회 활동백서’에 따르면 혁신위가 2017년 9월부터 1년 5개월간 사학비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35개 학교에서 441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이중 233건이 회계와 같은 금전 비리였다. 전체의 52.8%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인건비와 수당 등의 부적정한 지급이 21%로 가장 많았고, 재산 관리 부적정(14.6%), 배임·횡령·공용물 사적사용 등 부적정(14%), 세입·세출 부적정(11.1%), 계약체결 부적정(9.6%) 등 순이었다.
나머지 지적사항 유형들의 경우 인사 관련 지적이 11.3%로 두 번째로 많았다. 그밖에 학사·입시 관련이 10.4%, 법인·이사회 운영이 8.4% 등을 자치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65개 대학에 대한 조사·감사에서 총 755건의 위법·부당 사안을 지적했다. 이를 토대로 △임원 84명에 대한 임원취임승인취소 △ 2096명의 신분상 조치 ③△227건에 대한 258억 2000만 원의 재정상 조치 △ 99건에 대한 136명 고발· 수사의뢰 조치를 단행했다.
최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사학비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293개 대학(4년제 167개 대학, 전문대 126개 대학)에서 적발된 재단횡령, 회계부정 등 사학비리 건수는 1367건에 달했다. 적발된 비리의 비위 금액은 총 2624억4280만 원이다. 사립대 1곳 당 평균 4.7건, 9억1492만 원 규모의 비리가 발생한 셈이다.
박 의원은 “학교현장에서 비리를 저지르다 걸려도 버티고 징계처분이 내려져도 무시한다”며 “사학 자율성 보장 문제를 넘어 부실한 ‘사립학교법’이 사학범죄를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