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통화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은 미·중 무역 마찰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준은 지난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10년 7개월 만에 인하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 인하가 장기간의 인하 주기 시작이 아닌 정책 사이클 중간의 조정”이라고 말해 시장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제는 다음 FOMC까지 불과 5주 남은 상황에서 시장이 패닉에 빠졌다는 점이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이날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안전자산인 금과 미국 국채 가격은 급등했다. 유럽과 아시아 증시도 연일 요동치고 있다.
이런 사태를 촉발한 것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FOMC 당일인 지난달 31일 파월 의장에 대해 “실망했다”고 말했다. 바로 그 다음 날에는 3000억 달러(약 364조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표명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또 이날 달러화당 위안화 가치가 11년 만에 ‘7위안선’이 깨지자 미국 재무부는 25년 만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중국과의 갈등을 더욱 키웠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한 트위터 트윗에서도 “연준은 듣고 있나”라며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연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다시 내비쳤다.
이런 일련의 조치에서 보이는 트럼프의 속셈은 바로 연준으로하여금 금리를 인하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연준이 오는 9월 17~18일 개최하는 다음 FOMC에서 어쩔 수 없이 금리를 다시 내릴 것이라며 그 인하폭은 지난번과 같은 0.25%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0.50%포인트 등 더 큰 폭으로 낮춰야 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WSJ는 “갑자기 연준의 금리 인하가 확실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트럼프와 연준이 서로 작용해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경제에 스트레스가 걸리면 연준이 경기부양 일환으로 금리 인하를 실시하고, 다시 경계심이 줄어들어 주가가 회복하면 트럼프 정권이 중국과의 무역 마찰을 격화해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부정적인 순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런 순환이 정착되면 연준이 탈피할 방법이 없다. 의회가 정한 연준의 임무는 경기 지원이지 정책 비판이 아니다. 또 중국의 무역정책이 불공평하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일부 민주당 의원의 지지를 얻고 있다.
트럼프의 계속되는 압박에 급기야 연준 전 의장 4명이 이례적으로 파월 의장에 대한 위협을 멈춰 달라고 공동 탄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재닛 옐런과 벤 버냉키, 앨런 그린스펀, 폴 볼커는 이날 WSJ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연준과 그 의장이 경제 방면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게, 특히 연준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유로 제거되거나 강등될 것이라는 위협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