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말 그대로 씨가 말랐어요. 반포써밋 34평(전용면적 84㎡) 전세가 14억원을 호가합니다. 전세 물건이 나오기 무섭게 빠지니 집주인들이 부르는 게 값이죠.”(서초구 반포동 A공인 관계자)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강남권에서는 재건축 이주 수요와 자사고 폐지 여파에 전세 물건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규모 입주 폭탄을 앞두고도 집주인들의 실거주 비율이 높아지면서 전세가격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예고로 ‘로또 분양’을 기대하는 ‘전세 버티기’ 수요까지 더해지면 서울 전셋값은 지금보다 더 가파르게 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주수요에 전세 귀한 몸…서초구 가격 뜀박질에 동작구도 상승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초구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6월부터 지난 주까지 9주 연속 상승했다. 강남구나 송파구 등 다른 강남지역보다 늦게 상승 전환했지만 오름폭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지난 주에는 0.2%나 뛰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큰 상승폭이다. 33주 연속 떨어지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7주 연속 상승으로 반전한 데에는 서초구 전세시장의 영향이 컸다.
서초구 반포동 B공인 관계자는 “가뭄에 콩 나듯 전세 물건이 나오는데 이마저도 바로 계약되니 집주인들이 가격을 계속 높인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보증금 8억7000만원에 전세 거래된 ‘반포자이’ 전용 59㎡는 이달 9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다. 현재 호가는 9억5000만원이다. 호가를 기준으로 하면 한달 새 8000만원이 올랐다.
전달 8억1000만원에 거래된 ‘반포써밋’ 전용 59㎡는 호가가 최고 10억원까지 뛰었다. 집주인들은 전용 84㎡짜리 전세 호가를 14억원까지 높였다.
서초구 아파트 전셋값 급등은 인근 동작구까지 자극하고 있다. 흑석동 C공인 관계자는 “흑석동은 재개발 호재가 많은데다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이 전셋값까지 끌어올렸다”며 “최근에는 서초구의 재건축 이주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세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해 입주한 흑석동 ‘아크로 리버하임’ 전용 59㎡ 전세는 현재 7억5000까지 호가한다. 이 면적의 올해 최고 거래가는 6억8000만원이었다.
강남권에서는 2120가구 규모의 반포주공(1·2·4주구)이 오는 10월 이주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16일 법원이 관리처분계획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주가 불가능해지게 됐다. 하지만 서초 신동아(997), 신반포4지구(2898) 등이 줄줄이 이주에 나서는 만큼 전세 물건 찾기는 계속 어려울 전망이다.
◇분양가 상한제로 ‘전세 버티기’ 가세… 전세시장 ‘불안’전망
전문가들은 서울 강남 전셋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점친다. 강남권 이주수요가 내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직주근접 수요가 지속적으로 몰리는 서울 도심지역도 물량 부족에 전셋값 상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특히 마포구의 경우 대단지 ‘신촌숲 아이파크’(1015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지만 실거주 비율이 높아지면서 전세 공급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 아파트 전용 59㎡ 전세보증금은 최근 6억원을 넘어서며 가격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강동구 역시 연내 1만여 가구의 입주 폭탄을 안고 있지만 전세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자사고 폐지 영향 등 학군 수요도 여전히 전셋값 상승 요인이다.
특히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전세시장의 복병이 될 전망이다. 낮은 분양가 때문에 새 집을 기다리는 청약 대기 수요가 ‘전세 버티기’로 돌아서면서 전세가격 상승이 더 가팔라질 수 있어서다. 장기적으로는 분양가 통제로 인한 주택 공급 감소 우려도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으로 전세로 눌러앉는 수요가 늘면 가뜩이나 불안한 서울 전세시장을 더 들썩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