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과소지급 논란과 같이 반복되는 ‘약관분쟁’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업계는 궁극적인 문제로 ‘불분명한 책임주체’를 꼽았다. 당국과 업계 사이의 모호한 책임주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약관분쟁은 지속될 것이란 지적이다.
최근 자살보험금과 즉시연금 사태도 당국의 책임이냐, 보험사의 책임이냐를 두고 갈등이 일었다. 금융감독원은 보험 약관을 심사하는 등 긴밀한 개입을 했지만,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오롯이 보험사에만 돌리는 행태를 보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품의 약관들을 금감원이 일일이 다 심사해서 적부를 판정할 인력이나 능력이 없다면 권한을 넘겨야 한다”며 “약관에 대한 간섭은 하면서 책임은 보험사만 지라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2015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에는 10개의 표준약관을 폐지하고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의 경우 표준약관 제·개정 권한을 민간 기구인 상품심의위원회에 넘기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회에서도 화답했다. 이듬해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험 표준약관의 작성 권한을 금융감독원에서 보험협회로 옮기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보험상품 표준약관의 작성 주체를 금감원에서 사업자단체인 보험협회로 규정했다.
보험협회가 표준약관을 제정하고 변경할 경우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들어 금융위에 신고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하고 법령을 위반하거나 보험계약자 권익을 침해하면 약관 변경을 명령할 수 있다. 이는 보험사들에게 자율성을 주자는 취지다. 이 경우에는 보험약관 문제 발생 시 보험사에 명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최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해당 개정안이 보류되면서 이 같은 방안은 올스톱 됐다. 보험사와 협회가 약관을 작성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냐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보험업권은 다른 업권 대비 유독 소비자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란 분석이다.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은행·증권·보험의 3대 금융권역 중 유독 보험 분야의 소비자 분쟁이 압도적인 현실을 감안할 때, 표준약관의 작성 주체를 금융감독원에서 사업자 단체인 보험협회로 바꾸는 것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명백하게 역행하는 것”이라며 “보험협회가 자율규제기구에 걸맞은 공정성과 책임성을 시현할 때까지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단체의 의견도 비슷하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금감원과 보험회사 간의 갈등과 보험협회의 존재감 부재는 우리나라 보험업의 후진성과 무책임성을 웅변해주고 있다”며 “섣부른 일반론을 앞세워 표준약관의 제·개정 권한을 금융감독원에서 보험협회로 이관하는 것을 고민하기보단 금융소비자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