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흐의 황시증과 유튜브 가짜뉴스

입력 2019-10-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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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과 ‘아를의 밤의 카페’, 그리고 ‘해바라기’까지…. 반 고흐의 그림은 유난히 샛노랗다. 그 강렬하고도 몽환적인 노란색은 고흐의 그림을 명작의 반열로 올린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흐의 화풍은 유독 노란색을 좋아하는 그의 독특한 취향에 따른 것일까. 그보다는 ‘압생트(Absinthe)’가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게 보다 더 잘 알려진 얘기다.

프랑스 아를 지방이 산지인 압생트는 쑥을 원료로 만든 70도에 달하는 독주다. 잔에 따르면 은은한 초록색이 감도는 술로 일명 ‘녹색요정’으로 불렸고 너무나 독한 탓에 일종의 환각 효과까지 있어 파리의 예술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르누아르, 피카소, 마네도 압생트의 열열한 애호가였다.

문제는 술에 함유된 ‘산토닌’이라는 성분. 산토닌은 세상이 모두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유발했다. 물론, 고흐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코올 중독에 신음하면서도 “궁극의 노란색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속일 필요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로 합리화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와 비슷한 합리화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고흐의 말을 요사이 화법으로 바꾼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작은 부정(不正)쯤은 잊을 필요가 있다’ 정도가 아닐까.

이제는 대안 언론의 중요 플랫폼이 된 유튜브를 보자. 논객이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이 만든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있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짜뉴스냐, 아니냐의 기준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가’이다. 그러나 이들 가짜뉴스는 근거 없는 데이터와 주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유튜브에 올려진 수많은 가짜뉴스는 커뮤니티로, 카톡으로 빠르게 확산, 소비되기에 사실을 정정하기도 어렵다.

얼마 전 저녁 자리 도중 같이 자리한 사람의 소개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한 시사채널 운영자와 합석한 적이 있었다. 언변이 좋았던 그는 정부의 실책에 대해 쉴 새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대화 도중에 스마트폰을 켜고 그가 올린 영상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관한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한 루머의 진위에 대해 확인한 것이냐고 묻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오히려 그는 내게 되물었다. 맞는 말이니 떠도는 것이고 대중이 원하는 말이니 퍼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그것에 대해 속시원하게 퍼부어주는 게 사회적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거기까지 듣자, 대화 곳곳에 그가 ‘돈이 된다’라는 말을 끼워 넣은 게 비로소 이해됐다. 그는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침 튀기며 말했지만, 진짜 관심은 사회가 만들어준 돈에 있어 보였다.

어떤 블로그에서 본 ‘퇴근 후 한 달에 60만 원 버는 법’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자극적인 루머와 해외 반응만 모아 유튜브에 꼬박꼬박 올리면 월 60만~70만 원의 수입이 들어온다는 정보 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위해서는 작은 거짓말쯤은 문제가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기존 언론은 원하는 결과를 위해 잊고 가는 게 없을까. 사실 대중에게 가장 실망을 주고 있는 것은 기존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의 신뢰성이 과거와 달리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사실이다.

언론매체에게 유튜버나 퇴근 후 알바보다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따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매체가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위해, 사안을 침소봉대하거나, 반대로 다루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검찰 개혁의 핵심 쟁점인 검사의 기소독점주의와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인다. 특히나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이의 신상을 보호해 주지 않는 등의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경우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고흐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압생트에는 정신착란을 유발하는 ‘튜존’이라는 성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녹색요정이 아니라 ‘녹색악마’인 셈이다. 결국 고흐는 정신착란으로 귀를 스스로 잘랐고, 긴 요양 생활 끝에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마지막으로 자살(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로 인생을 마감했다.

명작을 남겼으나 대가는 컸다. 하지만, 대가인 고흐 정도니까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작은 부정을 잊은 채 결과를 갈구한 나머지는 자문해 볼 일이다.

잠깐. 고흐의 예술적 영감을 극대화했지만,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끈 압생트는 어떻게 됐을까. 압생트의 환각작용으로 인해 살인사건 등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자 스위스는 1910년, 프랑스는 1915년에 압생트의 제조 및 판매를 금지하게 된다. 현재 압생트는 다시 판매되고 있지만, 유해성분 제거를 위해 제조 방법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에 고흐가 마셨던 것과 다른 술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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