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별’ 임원 명암] ④바뀌는 임원 DNA…굴러온 임원이 박힌 임원 빼낸다

입력 2019-11-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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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임원 회의에 영어 걸림돌…최대주주 바뀌자 중국어 공부 삼매경

▲현대기아차는 최근 상무직급이 크게 증가했다. 초급 임원인 이사대우와 이사가 모두 상무급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그래픽=이투데이)
▲현대기아차는 최근 상무직급이 크게 증가했다. 초급 임원인 이사대우와 이사가 모두 상무급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그래픽=이투데이)

# 현대기아차 A 상무는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임원이 많아지면서 고민이 늘었다. 현대기아차는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외국계 인재를 임원급으로 속속 영입하고 있는데, 결정권자인 이들 외국인 임원과 실무급 회의를 할 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특히 고위 외국인 임원과 유학파 실무진이 영어로 토론할 때면 영어에 익숙지 못한 토종 한국 임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결국 A 상무는 회의가 끝나고 실무진에게 다시 보고받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외국인 임원이 많아지면서 사내 분위기도 바뀌었다. 영어에 자신 없는 임원들은 ‘한국인 책임자’ 밑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인사철을 앞두곤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인 부사장 또는 전무 아래에는 한국계 임원과 간부 사원이 넘치고 있다. 반대로 영어에 능통한 젊은 직원들은 외국계 고위 임원 밑에서 일하며 빠른 승진과 득세를 이어가고 있다.

# 지난해 중국 더블스타에 인수된 금호타이어의 B 임원은 중국어 공부에 한창이다. 중국계 고위 경영진과 직접 대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 금호타이어 임원들은 뒤늦은 어학 공부로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나섰다. 이 같은 모습은 과거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그룹에 넘어갔을 때도 연출됐던 장면이다.

과거 금호타이어 임원들의 회사 충성도는 업계에서도 유명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이름을 숫자로 형상화한 39를 많이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금호타이어의 프리미엄 제품 라인인 ‘KU39(삼구)’는 박 전 회장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돌았다. 사내 강당을 만들면서 좌석을 290개로 정했는데, 3X9(삼구)=27을 응용했다는 설, 옛 광화문 금호아시아나 건물 높이가 27층인 것도 이와 같은 이유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제공=LG화학)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제공=LG화학)

글로벌 기업들의 임원 DNA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또는 국내 경쟁사 출신의 인재를 영입하는가 하면, 회사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의사결정권자가 외부인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아졌다.

지난해 11월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글로벌 혁신기업인 3M 출신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LG화학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신 부회장 발탁은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LG화학이 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74년 창립 이후 처음이었다.

또 비(非)화학 관련 전공 출신자를 뽑은 것도 이례적이었다. 기존 LG화학 CEO는 전통적 화학 사업에 정통한 전공 출신이 맡았으나, 신 부회장은 화학 전공이 아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출신이다.

LG화학은 최근 전통적인 석유화학 사업에서 신소재, 배터리, 정보전자소재, 생명과학 등 첨단 소재·부품과 바이오 분야로 빠르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신 부회장의 소재·부품 사업 통찰력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LG는 신 부회장 외에도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 출신 홍범식 사장을 LG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영입했다. 또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 김형남 부사장은 LG 자동차부품팀장으로,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 출신 김이경 상무를 LG 인사팀 인재육성담당 상무로,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상무를 VS(자동차부품)사업본부 전무로 앉혔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자동차 최고디자인 책임자 사장 (사진제공=현대기아차)
▲피터 슈라이어 기아자동차 최고디자인 책임자 사장 (사진제공=현대기아차)

기아자동차는 독일 폭스바겐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영입해 기아차의 부흥을 일으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이던 2000년대 중반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기아차 최고디자인 책임자로 앉혔다.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디자인 혁신 경영’을 선언하고 ‘K 시리즈’, ‘스포티지’, ‘쏘렌토’ 등을 흥행시켰다.

현대차그룹의 외부 인재 수혈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독일 BMW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 사장, 영국 자동차업체 벤틀리 출신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디자인최고책임자 사장, 벤틀리 출신 디자이너 이상엽 전무 등이 현대차에 영입됐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분야의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의 AI 석학인 래리 헥 박사를 비롯해 AI 로보틱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다니엘 리 박사, 뇌 신경공학 기반 AI 분야의 세계적 석학 세바스찬 승 박사, AI 프로세서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하버드대 위구연 교수 등 해외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트렌드를 읽는 흐름도 빠르고 최신의 기술을 공부한 외부 또는 젊은 인재들의 역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기존 임원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력과 순발력이 없다면 자연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세바스찬 승' 교수(왼쪽), 펜실베니아대학교 '다니엘 리(Daniel D.Lee)' 교수(오른쪽) (사진제공=삼성전자)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세바스찬 승' 교수(왼쪽), 펜실베니아대학교 '다니엘 리(Daniel D.Lee)' 교수(오른쪽) (사진제공=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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