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제도를 도입한 대ㆍ중견기업 10곳 중 9곳이 현재 "정착 중"이라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그중 40%는 도입과 관련해 "별문제 없다"고 답했다.
단, 제도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유연근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300인 이상 기업' 200여 곳을 대상으로 ‘기업의 근로시간 단축 및 유연근로 실태’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12일 발표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기업 10곳 중 9곳은 "주 52시간 근로제에 적응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중 별 문제 없다고 답한 기업은 40%였다.
단, 근로시간 유연성이 부족하다(38%), 근로시간이 빠듯하다(22%) 등 애로사항도 있었다.
대한상의는 주 52시간 제도를 도입한 기업의 애로를 들은 결과 △집중근로 △돌발상황 △신제품ㆍ기술 개발 등 3가지로 분류했다.
우선 특정 시기에 근무가 집중되는 문제는 건설업계나 호텔업계 등 집중근무가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지속하는 분야에서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대한상의 측은 설명했다.
A 호텔 인사담당자는 “호텔업계는 행사가 몰리는 연말연시를 전후해 4개월 정도 집중근로가 불가피하다”며 “연말은 다가오는데 대책이 없어 고민이 크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돌발상황의 경우 과거에는 수시로 발생하는 생산라인 고장, 긴급 A/S 등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중견기업 B사 관계자는 “제품 생산으로 한창 바쁜 시기에 생산라인이 고장 나면 답이 없다”며 “주 52시간을 어기면서라도 급히 고쳐야 할지, 아니면 손실 감수하며 가동을 멈춰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고 말했다.
또, 성과지향형(연구ㆍ기술) 직무의 경우, 제품 출시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는 가운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제품기획과 기술개발이 위축되고 있다고 대한상의 측은 지적했다.
전자업계 대기업 C사는 "제품 수명주기가 긴 기존산업의 경우 단기간에 집중적인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적지만, 기술변화 빠른 ICT 기업은 3개월 정도의 집중 연구개발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유연근로제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라면서 “도입과정의 어려움과 활용 상의 제한 때문에 기업들이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국회와 정부에 제도보완을 촉구했다.
유연근로제란 기업과 근로자가 필요에 맞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탄력 근로제, 선택 근로제, 재량근로제, 인가연장 근로제 등이 있다.
탄력 근로제는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없으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제도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기본 40시간 연장 12시간)에 맞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일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업종의 경우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보다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다”며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탄력 근로제 개선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선택 근로제와 재량근로제의 보완도 요청했다.
선택 근로제는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근무하는 제도다.
대한상의는 "선택 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6개월로 늘여 달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근무시간 조정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노조 합의보다는 개인 또는 부서 단위 합의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대한상의는 재량근로제의 원활한 운영을 제약하는 ‘구체적인 지시금지’ 조항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 근로방법 등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하는 제도다.
연구개발, 디자인, 기자, PD 등 분야에 허용돼있다. 해당 근로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가 금지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의 지시ㆍ관리ㆍ감독이 불가피하다”며 “구체적인 지시를 말라는 것은 ‘재량근로제’를 사용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며 지시금지 규정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인가연장근로제도도 자연재해나 재난에 준하는 상황 이외에 개별기업의 긴박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허용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재근 대한상의 산업조사본부장은 “유연근로제 확대에 대한 오남용 우려가 있지만 그렇다고 기업에 꼭 필요한 제도까지 원천봉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오남용은 기업의 자정 노력과 정부의 근로 감독을 통해 해결하고, 근로시간의 유연한 활용을 위한 제도의 문은 반드시 열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