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은 또다시 한국은행을 향해 ‘물가안정’ 책무나 충실하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13일 2019년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서는 사실상 한 번 이상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도 주문했다. KDI는 지난달 말 ‘최근 물가 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통화정책은 금융안정보다 물가안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이 같은 주장은 KDI 출신 금융통화위원인 조동철·신인석 위원의 논리와 판박이다. 오죽하면 조동철 위원이 KDI를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까지 세간에 나돌 정도다. 조 위원은 8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정책심포지움에 참석한 자리에서 물가안정을 강조하면서 “제로금리가 꼭 기준금리 하한선은 아니다”며 날쌘 비둘기(통화완화파)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2016년 4월 취임 당시 “살찐 비둘기라 날지도 못한다”며 비둘기파가 아니라고 소개한 바 있었다.
범KDI 인사들의 이 같은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한은법을 보면 한은의 설립 목적을 밝힌 제1조 1항에서 ‘물가안정’을 제1 책무(mandate·맨데이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물가(CPI)는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를 달성한 적이 없다. 이론대로라면 물가목표치 달성을 위해 더 공격적인 금리인하가 필요했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우선, 이들은 한은법 제1조 2항에 제2 책무로 ‘금융안정’을 명기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부터 한은이 물가안정보다 금융안정을 더 중시해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박근혜정부 시절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소위 ‘초이노믹스’와 맞장구치며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연 5~6%대 증가세를 보이던 가계신용은 2015년 10.9%, 2016년 11.6%나 급증했다. 올 6월 말 기준 가계신용은 1556조 원을 기록 중이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경제성장률(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올 1분기 기준 92.1%에 달한다. 이는 주요 43개국 대비 여덟 번째로 많은 비중이며, 신흥국 중에서는 사실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은이 금융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로 이후 통화정책이 발목을 잡혔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인하할 필요가 있을 때조차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들은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당국의 규제 등 미시대책에 맡기고, 한은은 거시경제 상황을 감안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금리인하를 통해 가계부채를 키운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무책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물가안정은 1970년대 유가 파동을 겪으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1980년대 들어 도입한 제도다. 사실상 고물가 시절의 개념이다. 물가가 높을 때 금리인상을 통해 뛰는 물가를 잡을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물가가 낮을 때 금리인하를 통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제로금리 내지 마이너스금리까지 갔던 주요 선진국들에서 과연 물가가 그만큼 올랐나를 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안정만을 위해 통화정책을 펴자는 주장은 법에는 맞을지 몰라도 현 경제상황에는 역행하는 것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금통위와 한은이 너무 전통 경제학자들로만 채워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상은 변하는데 구태의연한 과거 이론으로 무장한 주류 경제학자들로 채워진 금통위와 한은으로서는 새로운 사고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인 셈이다. 마침 제로금리까지 가봤던 미국 연준이 통화정책체계를 점검 중이다. 향후 경기 하강 시 실효하한 도달 가능성과 함께, 기대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에 안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하에 이 같은 고민을 시작했다.
한은과 금통위도 제1 책무인 ‘물가안정’에 대해 재검토에 나서야 할 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관심의 중심인 ‘금융안정’으로 제1 책무를 교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2% 물가안정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목표에 비해, 금융안정은 그 정의가 모호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 기준은 새로운 논의의 장에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새로운 사고로 한 걸음 떼는 게 중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