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 ‘2R’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경기침체(Recession)’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희망퇴직(Retirement)’ 신청 접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한일 경제 갈등, 미·중 무역전쟁 등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경영환경은 악화일로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쁠 것으로 판단한 기업들은 감원 등 긴축경영에 돌입하는 상황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희망 퇴직에 나서는 기업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고정비용 절감과 사업재편을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불확실한 향후 경기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인화(人和)’로 잘 알려진 LG그룹이 대표적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취임 후 연말 ‘칼바람 인사’ 등 혁신적 인사를 예고하고 있다.
1조 원에 육박하는 적자로 인한 비상경영에 돌입한 LG디스플레이는 1년 새 직원 수가 무려 3899명 줄었다. 연말까지 LG디스플레이의 인력 규모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LG디스플레이는 기존 LCD(액정표시장치)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중심의 사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전체 임원 및 담당 조직의 약 25% 감축을 단행했다. 이달에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LG이노텍 역시 최근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희망퇴직 대상에는 생산직, 기술직, 엔지니어 등 현장직뿐만 아니라 사무직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성이 떨어진 LED(발광다이오드) 사업구조를 효율화해 고부가 가치 사업 중심으로 사업 체질을 바꾼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사업 부진으로 연말 인사에서 임원 규모가 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의 부진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
한진그룹도 연말 임원 인사에서 30% 감축설이 나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항공운송과 관련된 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버릴 것”이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대한항공은 최근 일본 여행 보이콧 운동의 여파로 경영환경이 악화하면서 3개월짜리 단기 무급 희망휴직에 나선 바 있다.
연내 매각 작업 완료를 목표로 조직 슬림화에 나선 아시아나항공도 무급휴직에 이어 희망퇴직 카드를 꺼냈다.
SK그룹 역시 실적 악화를 겪는 계열사에선 조직 축소와 함께 임원 숫자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 밖에 한화와 두산이 면세점 사업에서 잇달아 발을 빼며 관련 업무를 하던 인력 축소가 불가피하다.
자동차 기업은 올해 중순부터 일찌감치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9월부터 희망퇴직을 진행해 인력감축에 나섰다. 한국GM은 경차와 소형 상용차를 만드는 창원공장을 2교대에서 1교대로 바꾸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쌍용차는 임원 20% 감원, 임원 급여 10% 삭감, 근로자 복지 축소안을 자구안으로 내놨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불황과 경영 위기가 커지면서 고참 부장급들은 물론이고 낮은 연차 직원들까지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